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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시키는 치킨과 스마트폰 중독의 공통점

[스마트폰 디톡스 66일 도전기 ②] 하루 8시간은 무조건 참았더니, 한 달 만에 일어난 변화

등록 2020.05.04 08:01수정 2020.05.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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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네 번이 열 번이 된다면? '밤 11시 치킨' 수로는 점점 깊게 파이고 어느덧 이제는 밤 11시만 되면 절로 치킨 생각이 나게 된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네 번이 열 번이 된다면? '밤 11시 치킨' 수로는 점점 깊게 파이고 어느덧 이제는 밤 11시만 되면 절로 치킨 생각이 나게 된다.pixabay
 
[이전기사 : 하루 8시간, 스마트폰 안 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습관이나 중독, 멀티태스킹에 관해 말을 하는 책들을 보면 '뇌가소성'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뇌가소성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뇌가 바뀌는 능력을 말한다.

뇌가소성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깊게 파인 수로가 절로 따라 떠오른다.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우리 뇌엔 수로가 파이고, 반복이 지속되면 수로는 깊고 넓어진다. 수로가 깊고 넓어질수록 행동은 더 강화된다. 행동이 강화된다는 건 이젠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 행동을 아주 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처음엔 어쩌다가 밤 11시에 몇 번 치킨을 시켜먹었다고 해보자. '밤 11시 치킨' 수로가 얕게 파이기 시작한 것이다. 몇 번 야식을 먹다가 말면 이 수로는 사라진다.

그런데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네 번이 열 번이 된다면? '밤 11시 치킨' 수로는 점점 깊게 파이고 어느덧 이제는 밤 11시만 되면 절로 치킨 생각이 나게 된다는 게 뇌가소성의 원리! 이젠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밤 11시 치킨' 수로를 피해 가기가 어렵다.

스마트폰을 계속 하고 싶다는 충동을 다스리는 법


멀티태스킹도 뇌가소성으로 설명해 보자면, 멀티태스킹은 기본적으로 우리 뇌를 산만하고 피상적으로 사고하게끔 길들인다. 멀티태스킹 초반 우리 뇌에 '산만+피상' 수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처럼 몇 년 동안 징글맞게 멀티태스킹을 한다면? '산만+피상' 수로가 누가 와서 손보지도 못할 만큼 넓고 깊게 파이는 것이다. 이젠 '밤 11시 치킨' 수로와 마찬가지로 '산만+피상' 수로도 웬만해선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진득하니 깊게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연인지 내가 읽은 책들은 중독과 멀티태스킹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 챙김'을 소개했다. 명상을 통해 중독과 멀티태스킹의 욕구를 잠재우라는 것이다. '웬 명상?' 싶을 테지만 잘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명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있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고수가 아니고서야 아무 생각 안 하고 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명상 전문가들은 우리더러 '아무 생각 안 해야 해!'라며 절대 겁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안내하길, 우리는 그저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된다. 야식 중독자의 경우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내가 또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구나'라며 알아차리는 식이다. 

나 같은 스마트폰 중독자의 경우도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는 생각(충동)이 일어나면, 역시 충동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충동이 일어났다고 해서 꼭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행동하는 대신 그 충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충동은 사라진다(고 명상 고수들은 말한다).

3월 17일부터 내가 충동을 다스리는 방법이 이거였다. 스마트폰이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저 가만히 이 충동을 알아차리기만 한다. 그러고는 충동에 이끌려 행동을 하는 대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즉, 스마트폰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8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을 안 하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무조건 참아야 하느니라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잡았다가 놓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신경질이 났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잡았다가 놓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신경질이 났다. unsplash
 
이제 스마트폰 디톡스를 한 달 하면서 경험한 걸 이야기해 보겠다. 처음 4, 5일은 답답함, 짜증, 신경질이 차례대로 왔다 갔다가 또 왔다 갔다. 정말 답답했다. 눈앞에 버젓이 서 있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심정이 이럴까. 마치 나와 세상 사이에 암막 커튼이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고, 그 커튼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잡았다가 놓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신경질이 났다. 이런 부정적인 기분이 며칠 내내 지속됐다.

사는 게 참 지루하다는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 나는 정말 혼자 놀기의 달인이고, 혼자서도 하루를 재미있는 기분으로 꽉꽉 채워 넣을 수 있는 사람인데도, 지루했다. 심심하기도 했다. 심심하다는 느낌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평소 심심해서 미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왜 심심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던 내가 심심해서 우울해졌다. 나중에야 디지털 자극에 중독된 사람들이 더는 자극을 받지 못할 때 지루함, 심심함에 녹다운된다는 걸 알았다.

디톡스 시작 후 1, 2주 동안엔 자는 시간이 달라지기도 했다. 보통 12시만 되면 칼같이 잠이 드는 내가 새벽 2시, 3시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잤다. 오전, 오후 참고 참았던 걸 밤에 보상하는 기분이랄까. 디톡스 전과 비교하면 스마트폰을 하는 하루 총시간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첫 1, 2주 동안엔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는 충동 횟수도 줄어들지 않았다. 자꾸 충동이 일기에 짜증을 내다가, 도대체 충동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해 보니 아래와 같았다.

- 3월 24일 기록

11시 27분 : 순간적으로 스마트폰 쳐다봄. 그냥 하고 싶음.
12시 49분 : 또 스마트폰 쳐다봄. 지난 1시간 20분 동안에도 책 제목 등이 두세 번 떠오르면서 검색해볼까, 하고 생각했음. 예전 같으면 바로 검색했을 것임. 도서관과 서점 앱은 통제 안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쓸데없는 검색 욕망은 통제해야 함.
12시 52분 : 또 스마트폰 하고 싶음.
12시 53분 : 49분에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52분에도 또 하자 '아, 내가 3분 만에 또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 또 스마트폰 하고 싶어짐.  
12시 55분 : 내일 날씨 어떨까 궁금해서 날씨 앱 확인하고 싶음. 물론 참음.


3주째에 접어들면서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오전 7시 30분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자꾸 일어나졌다. 눈을 뜨면 오전 6시 30분이거나 6시 53분이었다. 오늘도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6시 47분이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일찍 일어나는지 무의식은 알까? 추측하건대, 아침 8시라는 시간이 내게 '긴장해야 할 시간'으로 각인이 돼서인 것 같다. 8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스마트폰 경계 태세에 들어가야 하니 정신이 미리부터 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즈음부터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하지 않게 됐다.

'활활 타오르는 집중력' 수로를 파고 싶다

디톡스를 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자연스레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늦게 알게 됐다는 점이다. 아침에 아차 하다가 스마트폰을 못 하면 8시부턴 꼼짝없이 못 하니, 뉴스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물론 노트북으로 확인해도 되지만 스마트폰 중독이 된 후로는 노트북으로는 검색을 제외한 인터넷을 원래 거의 하지 않았다. 정보를 늦게 안다고 불편했을까? 전혀. 당연하게도, 세상엔 늦게 알면 안 되는 정보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디톡스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충동은 좀 줄었을까. 횟수를 세어보며 하나하나 따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충동이 준 것 같긴 하다. 물론, 아직도 문득문득 스마트폰이 하고 싶어지고, 오후 3시 55분쯤 되면 언제 4시가 되나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충동은 조금씩 줄고 있다.

충동이 줄어서일까. 이젠 처음처럼 답답하거나 짜증나거나 신경질이 나지도 않는다. 여전히 지루하고 살짝 심심하긴 하지만, 이런 느낌도 옅어진 듯하다. 이젠 내 뇌도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 디톡스의 최종 목표는 내 뇌에 파인 '산만+피상' 수로에 모래를 끼얹어 덮고, '집중력 활활 타오르는 깊은' 수로를 새로 파는 것이다.
스마트폰 디톡스의 최종 목표는 내 뇌에 파인 '산만+피상' 수로에 모래를 끼얹어 덮고, '집중력 활활 타오르는 깊은' 수로를 새로 파는 것이다.unsplash
 
스마트폰 디톡스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을 잘 사용하고 싶어서였다. 적어도 하루에 8시간 만이라도 잘 사용한다면, 나머지 시간엔 정말이지 시간을 실컷 낭비한다고 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를 보낸 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난 한 달 난 시간을 잘 사용했을까. 증거로 뭘 댈까. 스마트폰을 안 한 시간 동안 책을 얼마나 더 읽었나 볼까.

이걸 말하려니 조금 뿌듯하다. 디톡스를 시작하기 전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가 좀 못마땅했다. 못 읽을 때는 한 달에 7권으로 막을 내린 달도 있었고, 2월에도 10권을 읽었다. 그렇다면 3월은 어떨까. 15권을 읽었다!

4월 들어 읽은 책은? 16일 기준 7.5권이다. 아직 한 달이 안 됐는데도 독서량이 가장 적었던 달(7권)을 벌써 뛰어넘은 것이다. 책을 더 많이 읽길 원했기 때문에, 지금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스마트폰 디톡스의 최종 목표는 내 뇌에 파인 '산만+피상' 수로에 모래를 끼얹어 덮고, '집중력 활활 타오르는 깊은' 수로를 새로 파는 것이다.

과연 66일 만에 수로를 제대로 팔 수 있을까. 만약 66일이 지나도 여전히 스마트폰을 너무 하고 싶어서 못 살겠다면? 어쩔 수 없지. 스마트폰 디톡스를 계속 이어가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 뇌도 집중하고 싶을 땐 거뜬히 집중할 수 있는 뇌, 스마트폰이 존재하기 전처럼 뭐든 어렵지 않게 집중할 수 있던 뇌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디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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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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