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잡았다가 놓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신경질이 났다.
unsplash
이제 스마트폰 디톡스를 한 달 하면서 경험한 걸 이야기해 보겠다. 처음 4, 5일은 답답함, 짜증, 신경질이 차례대로 왔다 갔다가 또 왔다 갔다. 정말 답답했다. 눈앞에 버젓이 서 있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심정이 이럴까. 마치 나와 세상 사이에 암막 커튼이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고, 그 커튼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잡았다가 놓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신경질이 났다. 이런 부정적인 기분이 며칠 내내 지속됐다.
사는 게 참 지루하다는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 나는 정말 혼자 놀기의 달인이고, 혼자서도 하루를 재미있는 기분으로 꽉꽉 채워 넣을 수 있는 사람인데도, 지루했다. 심심하기도 했다. 심심하다는 느낌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평소 심심해서 미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왜 심심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던 내가 심심해서 우울해졌다. 나중에야 디지털 자극에 중독된 사람들이 더는 자극을 받지 못할 때 지루함, 심심함에 녹다운된다는 걸 알았다.
디톡스 시작 후 1, 2주 동안엔 자는 시간이 달라지기도 했다. 보통 12시만 되면 칼같이 잠이 드는 내가 새벽 2시, 3시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잤다. 오전, 오후 참고 참았던 걸 밤에 보상하는 기분이랄까. 디톡스 전과 비교하면 스마트폰을 하는 하루 총시간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첫 1, 2주 동안엔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는 충동 횟수도 줄어들지 않았다. 자꾸 충동이 일기에 짜증을 내다가, 도대체 충동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해 보니 아래와 같았다.
- 3월 24일 기록
11시 27분 : 순간적으로 스마트폰 쳐다봄. 그냥 하고 싶음.
12시 49분 : 또 스마트폰 쳐다봄. 지난 1시간 20분 동안에도 책 제목 등이 두세 번 떠오르면서 검색해볼까, 하고 생각했음. 예전 같으면 바로 검색했을 것임. 도서관과 서점 앱은 통제 안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쓸데없는 검색 욕망은 통제해야 함.
12시 52분 : 또 스마트폰 하고 싶음.
12시 53분 : 49분에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52분에도 또 하자 '아, 내가 3분 만에 또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 또 스마트폰 하고 싶어짐.
12시 55분 : 내일 날씨 어떨까 궁금해서 날씨 앱 확인하고 싶음. 물론 참음.
3주째에 접어들면서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오전 7시 30분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자꾸 일어나졌다. 눈을 뜨면 오전 6시 30분이거나 6시 53분이었다. 오늘도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6시 47분이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일찍 일어나는지 무의식은 알까? 추측하건대, 아침 8시라는 시간이 내게 '긴장해야 할 시간'으로 각인이 돼서인 것 같다. 8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스마트폰 경계 태세에 들어가야 하니 정신이 미리부터 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즈음부터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하지 않게 됐다.
'활활 타오르는 집중력' 수로를 파고 싶다
디톡스를 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자연스레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늦게 알게 됐다는 점이다. 아침에 아차 하다가 스마트폰을 못 하면 8시부턴 꼼짝없이 못 하니, 뉴스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물론 노트북으로 확인해도 되지만 스마트폰 중독이 된 후로는 노트북으로는 검색을 제외한 인터넷을 원래 거의 하지 않았다. 정보를 늦게 안다고 불편했을까? 전혀. 당연하게도, 세상엔 늦게 알면 안 되는 정보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디톡스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충동은 좀 줄었을까. 횟수를 세어보며 하나하나 따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충동이 준 것 같긴 하다. 물론, 아직도 문득문득 스마트폰이 하고 싶어지고, 오후 3시 55분쯤 되면 언제 4시가 되나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충동은 조금씩 줄고 있다.
충동이 줄어서일까. 이젠 처음처럼 답답하거나 짜증나거나 신경질이 나지도 않는다. 여전히 지루하고 살짝 심심하긴 하지만, 이런 느낌도 옅어진 듯하다. 이젠 내 뇌도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