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
연합뉴스/AP
독일 좌파당(Die Linke)의 원내대표인 바르취(Dietmar Bartsch)는 자신의 트위터에 얼마 전에 있었던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의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의 폭력으로 다친 경찰의 회복을 빌며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이러한 언행이 당내의 여러 좌파 당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좌파당 당대표단의 첼리크(Raul Zelik)는 트위터의 댓글에서 그를 "역겨운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좌파당의 연방의회 의원인 라이디흐(Sabine Leidig)는 "전형적인 아부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독일 좌파당의 당원이 원내대표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좌파당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을 반영하는 일이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공산주의
사실 독일 좌파당은 스스로 말하는 대로 과거 독일 사민당을 떠나 스파르타쿠스연맹(Spartacusbund)을 결성하여 독일공산당(KPD)을 창건한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라입크네흐트(Karl Leibknecht)를 기원으로 하는 정당정치적 전통을 따르면서 독일의 제4대 수상인 빌리 브란트(Willi Brandt)의 정신도 계승하는 정당이다. 더 나아가 라퐁텐(Oskar Lafontaine)의 말대로 동서독을 망라한 모든 좌파를 끌어안은 정당이다. 형식적으로는 독일 좌파당은 구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2005년 이념 문제로 사민당에서 분리된 통일좌파당(WASG)이 연합하여 2007년 6월 16일 자본주의의 극복과 민주적 사회주의의 추구를 강령으로 하여 수립된 당이다.
그런데 특히 난민 문제를 둘러싼 이념 대결이 치열했던 2017년 총선에서 독일 좌파당은 9.2%의 득표율로 5명의 지역구 의원과 64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확보했다. 반면에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2013년 총선에 비하여 7.9%p 늘어난 12.6%의 득표율로 연방의회에서 20.5%의 득표율을 보인 사민당에 이어 제3위의 당으로 급부상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또한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자민당(FDP)도 2013년에 비하여 5.9%p 상승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에 비하여 좌파를 대변하는 좌파당과 녹색당의 지지는 정체 현상을 보였다. 참고로 집권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과 독일 사민당(SPD)이 각각 2013년에 비하여 8.6%p와 5.2%p나 낮은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다. 거대 정당의 무기력한 행보에 실망한 국민들이 모두 극우나 우파 정당으로 쏠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중도적인 집권 여당만이 아니라 좌파당과 녹색당을 주축으로 하는 독일 진보 세력에게는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됐다.
사실 독일 국민들의 보수 색채는 매우 긴 역사를 지닌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프러시아와 독일 제국, 그리고 제3제국을 거쳐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좌파는 늘 핍박의 대상이었다. 비스마르크의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히틀러와 아데나워도 그대로 계승하였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갈등의 상황에서 반공주의는 서독의 정체성과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Willi Brandt)의 동방정책은 독일이 무조건적인 반공주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함께 이루어진 독일 통일 이후에 비로소 좌파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인 핍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이제 의회 정치라는 제도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좌파 자체의 내부적인 이념 논쟁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르취의 경찰에 관한 트위터 글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한 좌파당 내부의 고민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공공연한 비밀
사실 독일 경찰뿐만 아니라 독일군 내부의 비록 일부라고 하여도 조직적 인종차별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올해 초 헤센주(Hessen)에서는 12명의 경찰관이 이른바 '극우 네트워크'를 결성한 혐의로 조사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온라인 채팅방에서 히틀러의 사진과 나치 십자가(Hakenkreuz)를 나누어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경찰들은 극우 분자들의 문신을 새기거나 나치 친위대 유니폼이나 문장을 소유한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 경찰 내부에 극우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공무집행에서 인종차별적인 행위가 분명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드물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독일 여론조사기관인 시비(Civey)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51.3%가 독일 경찰에서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찾아 볼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37.1%만 경찰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응답자 가운데 10.3%만이 경찰에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경찰 내부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50.5%가 그렇다고 답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통계를 보아도 문제 경찰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검찰 차원에서 조사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그런 경찰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 좌파당 원내대표인 바르취의 입에서도 나오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의 요지는 최근 들어서 독일 경찰의 은밀한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는 있지만 경찰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58년 구 동독의 슈튜랄순트(Stralsund)에서 태어난 바르취는 1977년부터 사회주의통일당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공산주의자 출신 좌파정치가이다. 또한 통일 이후에도 민사당의 재무담당관과 원내대표를 역임하며 좌파 정당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는 통일 이후 독일 좌파를 기성 정치권에 자리매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시(Gregor Gysi)가 2015년 6월 7일 물러난 이후 바겐크네흐트(Sahra Wagenknecht)와 공동 당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좌파당 내부의 대표적인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맞서 구서독 출신으로 좌파당 공동 당대표인 릭싱거(Bernd Riexinger)는 언론과의 회견에서 "독일 경찰의 인종차별과 폭력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좌파당의 국내 정치 대변인인 엘프케(Ulla Jelpke)는 최근 연방정부와 주정부 내무 장관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독일 경찰의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폭력을 비판하고 베를린시 의회에서 결의한 반차별법과 같은 제도적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실정치와의 타협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5월에는 브란덴부르크의 포르스트(Forst) 지방당 위원장 페슈케(Ingo Paeschke)가 시의회에서 청소년센터 신축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독일대안당 인사와 나란히 자리를 같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포르스트의 좌파당은 이 건축 계획과 관련하여 독일대안당과 의견을 같이했다.
이는 좌파당 당원들의 격분을 불러왔다. 죄파당은 이미 중앙당 차원에서 독일대안당과는 그 어떤 협력도 하지 말 것을 결의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도 지방당 차원에서 이러한 결의를 무시한 채 독자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포르스트 지방당 간부들은 페쉬케의 즉각 퇴진을 요구 했지만 막상 이 지역의 평당원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지역 특성상 독일대안당과의 협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좌파당의 브란덴부르크의 라우시츠(Lausitz) 지역당에서는 포르스트 지방당을 해산할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페슈케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도 독일대안당과의 협력을 지속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비쳤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에서는 녹색당이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독일 통일 이후부터는 좌파당이 녹색당과 더불어 소수자의 인권 수호를 강조하며 구조적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그 좌파당에서 이제는 제도권과의 협력과 현실 정치와의 타협의 문제를 놓고 내부적인 분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대약진을 목격한 좌파당 내부의 실용주의 파벌의 불안이 현실 타협적인 행보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동독 시절 철저한 상명하복적인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예가 모인 좌파당조차도 정치 현실에 뛰어든 이상 이념만으로 버티기에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가? 이런 행보로 과연 좌파당이 독일대안당에 빼앗긴 민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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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다" 독일 좌파당 원내대표가 비난 받은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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