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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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연이어 고국 헝가리에서도 연주회를 연다. 얼마 전 헝가리에 대홍수가 났을 때, 리스트가 모금 운동에 앞장섰던 것에 대한 감사로 헝가리로부터 초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헝가리에는 리스트 돌풍이 불었다. 리스트의 예술성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사브르(검)를 상류층 무리로부터 선물 받은 리스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감격을 담아 얼마 후 리스트는 '헝가리 광시곡'을 발표한다. 빈으로 돌아온 리스트는 본격적으로 연주 여행을 계획한다.
프라하를 시작으로 순회공연이 시작되었다. 리스트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베토벤, 바흐, 쇼팽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해 청중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전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오케스트라보다 더 오케스트라답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음반도 없었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기 쉽지 않았던 당시에는 리스트의 이런 작업으로 인해 대중들은 쉽게 여러 곡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시대 사람들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오페라 아리아의 악상을 가져다가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재창조했는데, 이를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편곡과 차별되는 것으로 리스트뿐 아니라, 탈베르크, 힐러 등 여러 연주가가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는 리스트의 패러프레이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런 작업 또한 오페라 극장에 가서 노래를 직접들을 수 없는 대중들에게 유용했다.
또한, '리스트의 업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향시다. 리스트는 조르주 상드나 빅토르 위고 등 문인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자신의 시적인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표현을 위해 교향곡이 적합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교향시다. 교향시가 교향곡과 다른 점은 1악장의 형식으로 된 점, 그리고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음악에 개인의 감정표현이 중요하게 사용됐다는 점이다. 리스트는 교향시로 마제파, 프렐류드, 햄릿 등 총 13개의 교향시를 남겼다.
리스트는 피아노 위치를 옆으로 돌려놓고 관중들이 자신의 잘 생긴 옆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피아노 건반도 비스듬히 열어놓아 소리가 반사되어 청중들에게 더 잘 들리도록 위치를 조정해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방식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리스트가 순회공연을 하는 동안 유럽 전역은 리스트 광풍에 휩싸였다. 리스트는 여자 문제를 자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마리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둘은 서로 양육 문제로 시간을 끌다가 결국 둘은 1844년에 완전히 헤어진다.
리스트와 결별한 마리는 1846년 자신과 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넬리다'를 발표하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누가 봐도 리스트와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예술가 청년과 귀족 부인의 사랑 이야기다. 문제는 리스트를 의지박약한 화가로 그려 끝내 자신의 품 안에서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헤어짐은 또 다른 인연을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