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의 DJ
자료사진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김대중을 태운 승용차는 한참을 달린 뒤 그를 어느 빌딩 다다미방에 내려놨다. 이후 납치범들은 김대중의 온몸을 묶었던 끈을 풀고 옷을 벗긴 뒤 다시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신발도 구두 대신에 운동화로 갈아 신겼다. 그런 뒤 그들은 김대중을 다시 끈으로 칭칭 묶었다. 그리고는 화물포장용 강력 테이프로 얼굴만 남기고 몸 전체를 둘둘 감은 뒤 모터보트에 태웠다.
보트 위에서 납치범들은 김대중의 머리에 보자기 같은 것을 씌웠다. 순간 김대중은 죽음을 직감하면서 성호를 그었다. 그때 한 납치범이 김대중의 배를 걷어차며 내뱉었다.
"이 새끼가!"
모터보트는 1시간 쯤 달린 뒤 커다란 배로 김대중을 옮겨 실었다. 한 행동대원이 김대중을 때렸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오. 굳이 때릴 필요는 없지 않소."
그 말 탓인지 매질이 그쳤다. 그때까지 김대중을 납치한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에게 인계하는 것 같았다. 김대중은 갑판 선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온몸은 더욱 촘촘하게 묶였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한 뒤 묶고, 두 발도 묶었다. 몸 위, 아래, 가운데, 세 토막으로 나눠 흡사 시체를 염하듯 묶었다. 손목에는 30~40kg 무게의 돌인지 쇳덩이인지를 달았다.
"이만하면 바다에 던져도 풀리지 않겠지?"
그런 말이 김대중의 귀에 들렸다. 곧 바다에 던질 게 분명해 보였다. 김대중은 갑자기 살고 싶은 생각이 엄습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바로 앞에 서 계셨다. 성당에서 봤던 예수님 그 모습이었다. 김대중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순간 눈에 붉은 빛이 번쩍 스쳤다. 갑자기 엔진소리가 폭음처럼 요란하더니 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내달렸다. 선실에 있던 납치범들의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다!"
폭음 같은 게 들리고 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30여 분 달리던 배가 속도를 줄였다. 사방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