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대구 독립만세운동을 기관총 등으로 무력 진압했던 일본군 80연대의 주둔지에는 현재 미군 부대 캠프헨리가 들어서 있다.
정만진
당시 일본군 80연대는 1916년부터 현재의 캠프헨리(Camp Henry, 남구 이천로 100) 자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6만2천 평 규모의 캠프헨리는 주한 미군 병참‧행정 사령부로, 일본군 80연대가 주둔했던 군사 용지와 시설을 1945년 10월 1일 이어받았다.
청일전쟁 때부터 대구에 주둔했던 일본 군대
일본군이 (임진왜란 시기를 제외하고) 대구에 처음으로 군사 진지를 구축한 것은 청일전쟁(淸日戰爭) 때인 1894년이다. 이때 병참 부대가 대구 달성(達城)에 주둔했고, 헌병대가 토성 동쪽 비탈에 설치되었다. 통신 수비대도 토성 인근에 배치됐다. 261년(신라 첨해 이사금 15) 이래 국가 군사 시설이었던 달성토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더불어 대한민국 고대 축성술을 증언해주는 중요 사적인데,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일제는 고의로 겨레 정기가 서려 있는 역사유적을 군화로 짓밟았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일제는 1905년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이곳을 공원화했고, 1906년 일본 왕에게 절하는 요배전을 설치했으며, 급기야 1914년에는 서울 남산 다음으로 규모가 큰 신사까지 세웠다.
사적을 공원으로 만들어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든 일본
일제는 1904년 러일전쟁(露日戰爭) 때에도 자국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대구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일제는 1907년 현재의 남구 대명로 240 일대에 경비행장, 사격장, 군사 훈련장을 설치했다. 이곳 22만6천 평은 1950년 이래 미군 부대 캠프워커(Camp Walker)가 되었고, 현재는 헬기장과 위락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