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청에 직접 가서 빈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하고 대상자들은 집에서 듣는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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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내가 강의하는 대상자는 지방 교육청 신규 장학사들이었다. 신규 장학사 연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내가 초청되었는데, 나는 교육청에 직접 가서 빈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하고 대상자들은 집에서 듣는 형식이었다. 옆 강의실에는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대비해 숙련가가 대기, 화면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색한 오 분이 지나자, 줌 사용이 손에 익어 드디어 '뻘 줌(줌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신조어)'에서 벗어나 몰입되었다.
강의 내용에 울컥하는 문구가 많았는데, 내가 울컥할 것 같은 문장은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그분들이 대신 읽어주는 문구를 듣다가 난 또 눈물을 흘리고. 내가 우니 몇 분이 따라 우셨고 우는 그분들을 보고 나도 또 따라 울고, 또다시 시작된 다람쥐 지옥.
비까지 오고 온라인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망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상 준비한 강의의 반밖에 못 했음을 알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생각했다. 예술이 별건가. 우리가 이렇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그게 예술이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사는 게 연극 같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다가 이제 무대 위에서 내려와 집으로 가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광대인 것도 같았고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악당인 것도 같았다.
타인의 삶을 소개하면서 문득 내 삶을 돌아본 건지, 단지 울고 나면 그 순간엔 사람이 조금은 착해지는 것인지,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러라고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결코 변치 않는 것
집에 도착해 자려고 누웠는데 친구 작가한테 톡이 왔다. "나 줌으로 글쓰기 수업하는데 줌 해 봤어?" "그럼, 나 줌 전문가야." 진짜 세상이 난리구나!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또 두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헤매던 친구가 화면에 나타났을 때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화면 전체에 친구의 이마가 꽉 차 있었다. 긴장한 친구가 노트북 앞에 너무 바짝 앉아 있었기에 나는 뜻하지 않게 그녀 이마의 모공까지 다 보게 되었다. 나는 노트북과 약간의 거리를 둘 것을 1차로 당부했다.
친구는 나에게 첫 줌 강의가 어땠냐고 물었다. 난 프로라면 내 감정은 조절하면서 상대에게 감동을 줘야 마땅한데 내가 먼저 울어버리는 아마추어 짓을 하고 말았다고 고백하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 강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가 웃느라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이번엔 정수리 모공이 다 보였다. 쩝, 한밤중에 안구 테러.
친구는 안 봐도 왠지 그랬을 거 같다고 자꾸 웃었다. 이왕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나머지 조작법도 꼼꼼히 알려주고 작별 인사를 하니 또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줌을 끄고 보니 메일이 와 있다.
"작가님, 잘 도착하셨는지요. 오늘 강의 너무 감동적이었고요, 장학사님들의 열렬한 요구로 한 번 더 모시고 준비하신 2부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은 인생은 이렇듯 항상 내 예상과 반대로 흐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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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가 된 모니터, 인생 최초 비대면 강의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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