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박근혜 부녀
대한민국 정부
박근혜의 행적
2020년 한국에 살고 있는 60대 이상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대한민국 여성 중 가장 많이 들어본 이름을 꼽으라면 육영수 여사와 영애 박근혜일 듯하다.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15 경축식장에서 서거했다. 그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귀에 익은 여성 이름은 아마도 박근혜일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에서부터 2017년 3월 10일 제18대 대통령으로 재임 중 탄핵으로 물러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수많은 추종자들이 피켓을 들고 교도소 밖에서도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는 현실이다.
앞선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이 남의 시선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한편으로는 독이 되기에 박복하다. 그래서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도 생겨났나 보다.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양친 모두 비명에 잃고, 훗날 대통령이 돼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 게다가 헌정 이후 최초로 탄핵된 불명예를 안은 대통령은 앞으로도 좀처럼 나오기 힘들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행적을 기록해본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이었다. 이후 아버지가 서울 신당동에 집을 마련할 때까지 아버지 부임지를 따라 자주 이사 다녔다. 첫돌 무렵에는 전남 광주시 동명동 셋방에서 살았으며, 1953년 여름에는 서울 동숭동으로, 다시 이듬해에는 광주로 내려가 1955년 7월 아버지가 사단장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말씨는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서울 말씨였다. 이는 충청도 옥천 출신의 어머니 육영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가 아홉 살이던 1961년 5월 15일 밤, 아버지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위해 집을 나서는데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고 가세요"라면서 가족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을 마련했다. 육영수는 그날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몰랐기에 그렇게 말했을 듯하다. 그러자 박정희는 묶던 군화 끈을 풀고 근혜 방에 가서 격려해주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그 이튿날 새벽 쿠데타의 성공으로 모든 게 달라졌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자 박근혜는 대통령 딸 영애로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자랐다.
성심여자중학교 2학년 때 세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영향 탓인지 불교에도 심취했다. 대통령 영애였지만 학교 동창생들에게 비친 그의 이미지는 '소박하고 검소하며 촌스러운 엄친딸'로 기억됐다고 한다. 이는 부모의 가정교육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치마 길이는 늘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고, 도시락에는 보리쌀 밥에 멸치볶음, 달걀부침이 주된 메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