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앞표지
해피북스투유
코로나19 유행만 해도 방역수칙을 어긴 소수 때문에 확산세가 다시 치솟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소수의 몰염치를 뛰어넘는 어떠한 양심과 공동체적 의식의 힘이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맞벌이하는 내가 본격적으로 국내 감염이 시작된 2월부터 지금까지 아이를 어린이집 긴급보육에 맡길 수 있었던 것도, 외국처럼 '봉쇄' 사태만큼은 겪지 않고 있는 것도, 매일 답답한 마스크를 견디고, 손을 열심히 씻고,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며 어떻게든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막으려는 시민들의 마음과 실천의 힘 때문이리라.
사전은 염치를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정의는 '나와 세계가 연결돼 있음을 감각하는 것' 아닐까.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려는 마음과 노력, 그것이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염치의 의미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 좀 더 넓고 단단한 염치가 작동한다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공존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례 없는 기후위기를 발판 삼아 지구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세상을 원한다면 다른 선택을
어떻게 해야 나와 우리의 '사회적 염치'를 키울 수 있을까. 책에는 염치의 미덕을 보여준 백종원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잘 살펴보면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들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뒤, 앞만 보고 내달리려는 관성을 거슬러 핸들을 단숨에 꺾었다. 한류 톱스타인 아이유는 "지금 이상의 재산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린이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2015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한 금액만 7억2000만 원"이고, 코로나19와 관련해 벌써 4억 넘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광기업 집안 아들인 채현국은 사람들의 목숨값과 불의와의 타협으로 떼돈을 벌어야 하는 잔인한 기업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 회사를 팔았다. "매각대금은 탄광사고 피해자에게, 광부들에게" 배분했다. '금수저'에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됐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올곧게 이어오고 있다.
다른 세상을 원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고 싶다면 답답해도 각 개인의 이동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멈추고 싶다면 귀찮아도 텀블러를 쓰고, 고기를 덜 먹거나 안 먹고, 석탄에너지 소비를 줄일 방법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 불편함을 견뎌내는 게 단순한 부끄러움과 사회적 염치를 가르는 기준 아닐까 싶다.
둘, 그들은 어제보다 나아지려 노력했다. 하루아침에 완벽한 이상까지 도달할 순 없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상상하며 실천하면 된다고 믿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의 무대인 청주동물원에서는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동물들을 돌보지만, 그곳 구성원들은 늘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드넓은 자연에서 살아가야 할 동물들에게 동물원 우리는 '감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초원에 동물을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청주동물원 사람들은 쉽게 무력해지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안에서 뱅뱅 도는 표범을 위해 길(원형 통행로)를 내줬고, 나무 속에서 먹이를 빼먹는 습성을 가진 동물을 위해 대나무 속에 먹이를 줬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동물에게는 '캣 타워'를 만들어줬다. <동물, 원>에 나오는 청주동물원은 그런 곳이었다. 그 찔림, 그 미안함을 덜어내려는 행위가 실제 일어난 장소였다." - 100쪽
보름달에 빈 아이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