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닝턴 기자가 찍은 당시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대전 보문산 옆 강바위산-마경산 자락과 동일했다. 희생자가 묻힌 구덩이에서 지금의 곤룡터널을 등지고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앵글을 맞춘 것이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위 아래 붉은 네모안)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심규상
<오마이뉴스>가 현재 골령골에서 유해를 발굴 중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아래 공동조사단)과 함께 16일 위닝턴 기자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대전 보문산 자락과 동일했다. 희생자가 묻힌 구덩이에서 지금의 곤룡터널을 등지고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앵글을 맞춘 것이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이는 '1990대 도로공사 당시 유해가 쏟아져 나와 공사 관계자들이 트럭으로 싣고 나갔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박선주 조사단장은 "당시 도로 위치와 모양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한 사진"이라며 "대부분의 유해가 공사 도중 유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사진을 토대로 지금의 도로 주변에 대한 시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동구청은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보도한 위닝턴 기자의 자료를 받기 위해 셰필드 대학 측과 자료 제공 및 상호 파트너십 구축 방안 등을 협의해 왔다. 이를 위해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가 셰필드 대학을 방문 중이다.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는 방문 기간 중 위닝턴이 남긴 주요 자료를 확인해 오는 12월, 동구청 주최 관련 전시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등 최소 4000명, 최대 7000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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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후 시신 묻은 구덩이, 70년 지난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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