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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동역 가기가 무서워요"

교통약자도 행복한 지하철 위해... 상일동역서 직접 교통약자와 동행해보니

등록 2020.12.01 16:37수정 2020.12.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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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비장애인의 눈과 관점으로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장애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강동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

지난 18년간(1999년~2017년) 수도권 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 리프트 관련 사고는 17건에 이른다. 장애인들은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지하철 승강기 설치를 호소했다. 하지만 24개역(서울)에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승강기를 이용해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상일동역은 섬식승강장(철도역에서 양쪽으로 열차가 발착할 수 있도록 선로가 배치된 승강장) 구조로 되어있어 대표적으로 '1역사 1동선' 확보가 어려운 역이다. 아직 경사형 리프트가 남아있는 상일동역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불편할까. 직접 현장으로 나가보았다.

아직도 리프트가 남아있다
 

승강장으로 가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하고 있는 심미석씨의 모습 ⓒ 김민지

 
11월 8일 오후 2시경, 상일동역은 한산했다. 승강장에 내려보니, 세 개의 전철 라인이 한 공간에 있는 특수한 구조 때문에 폭이 매우 좁았다. 전철 선로와 다른 선로 사이에 상하 계단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층과 승강장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경로는 계단뿐이었다. 지상 출구와 대합실까지는 승강기가 연결되어 있어 장애인이 이동하기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그러나, 대합실에서 승강장까지는 오로지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리프트를 사용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교통약자 심미석(78)씨를 만났다. 지상에서 대합실까지는 승강기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진입했으나, 카드를 찍고 통과하는 지점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먼저 전동식 보행기에 탑승한 채로는 혼자 문을 열 수 없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어야만 했다. 시민의 도움을 받아 문을 통과한 그는 또 한 번 당황했다. 그가 들어간 방향의 계단에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갔던 길에서 나와 리프트가 설치된 맞은편 통로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심미석씨와 그 긴 구간을 함께 동행했다.

"다른 역들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상일동역은 왜 이렇게 이용하기 어려운지 모르겠어. 리프트를 사용하는 게 골치 아프고. 역무원을 15분 20분 기다려도 오지 않고. 원래 상일동역이 종착역이었는데 (역이) 더 생기면서 이용이 더 불편해졌어. 밖에서 승강기를 타고 역으로 와도 결국엔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니까. 지하철이 오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역에서 한참을 보내야 해."

결국, 심미석씨가 역에서부터 승강장에 완전히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 넘었다. 상일동역의 구조상 역무원 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는 상일동역의 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통약자의 관점에서 봐주기를 간절히 당부했다.

교통약자에게 '행복하지 않은'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사용을 위해서 입구 반대편까지 가야 하는 구조를 담은 모습 ⓒ 고혜수

 
휠체어 리프트는 이용자 불편만의 문제가 아니다. 리프트는 장애인들의 목숨을 꾸준히 위협해왔다. 장애인들은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해 왔지만, 승강기 설치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지난 9월 '1 역사 1동선' 확보를 위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역사 내 계단과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 행위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해당 역들에 승강기가 없는 것까지는 차별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동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이는 만일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설치, 운행하고 방관해온 공사와 정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판결"이라 일축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통약자가 떠안게 된다며 큰 실망감을 표했다.

"장애인들이 직접 변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합동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기울어지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구조의 문제로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저희 장애인들과 함께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강동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

서울시는 구조상 승강기 설치가 어려운 역들이 상당수 존재해 수직형 리프트를 대안으로 검토 중이다. 하지만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 장애인들에게는 수직형 리프트 또한 '살인기계'로 통한다. 수직형 리프트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규정상 리프트는 승강기보다 적은 하중으로 표기되어있기 때문에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전동휠체어와 스쿠터를 견디기 힘들다. 또한, 리프트는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보호장치가 얇은 안전바뿐이어서 낙사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누구나 안전하고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다짐이다. 현재 교통약자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비장애인, 장애인 모두가 안전히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법적 제도와 실질적 이용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 내에서 인권 보장을 위해 끊임없이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변화해나가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승강기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상일동역 #1역사 1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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