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권우성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깜빡해도 조금은 느긋하게 집에 다시 들어왔는데, 지금은 문 앞만 벗어나도 화들짝 놀라 집에 들어온다. 몇 발자국 나서지 않아 마스크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할 지경이다. 벌금의 효과보다는 철저한 자기 방역의 효과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느 이유로든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멈춘 것 같아도 작은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완벽한 멈춤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각자 아침에 일어나 활동하고 저녁이 되면 돌아올 것이고, 매일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출근과 퇴근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온라인을 통해 회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누구는 죽겠다고 하고 누구는 간신히 버틴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아직 살아 있다.
이사 온 지 20년째, 여기저기 손을 볼 곳이 많아졌다. 2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양쪽에서 사용하니 모두 50가구가 이웃하고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중 30퍼센트 이상이 크든 작든 리모델링 혹은 집 수리를 마친 상태다. 소음도 자주 들리고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은 내부 수리 안내 공고문도 제법 자주 접한다. 외부의 창과 화장실, 부엌을 바꾸거나, 가벽을 세우거나 베란다를 터서 내부를 바꾸고 넓히는 공사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어느새 많은 가구가 밖에서 보기에도 표 나게 깔끔하게 바뀌었다.
특히 새로 이사 오는 집은 리모델링이 필수다. 한 달여의 긴 시간을 들여 집 내부를 말끔하게 수리한다. 수리하는 가구들이 생기며 발생하는 소음이 크지만 모두가 침묵으로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자신의 차례도 될 터이니. 공고를 통해 양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견디기 쉬운 것은 아니다. 처음 일주일은 데시벨이 꽤 높고 다음 이삼 주는 신경을 은근히 자극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며칠 전, 위층에 이사 올 예정인 예비 입주민으로부터 마스크 2장과 손편지를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이해와 당부의 메시지였다. 센스 있는 당부에 참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만약 우리도 집수리를 하게 된다면 그런 지혜를 발휘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소음은 여전히 힘들다. 여하튼 우리 집도 손볼 곳이 많다.
리모델링도 새 김치냉장고 구매도... 모두 미뤘다
살면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담이 가중된다. 이사에 버금가는 수고가 따를 것이 분명하고, 많은 살림살이를 밖에 내놓거나 이삿짐 컨테이너를 빌려야 한다. 짧아도 일주일은 가족들 모두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집을 비울 사정이 못 된다. 여전히 우리집 공시생 둘이 코로나 단계에 따라 집에 종일 있거나 단계가 완화되면 도서관에 가거나 하는 중이니.
모든 경제가 잠시 멈춘 듯한 상황에서 큰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화장실 따로, 싱크대 따로 부담을 덜며 집을 비우지 않고 조금씩 수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생각만 하고 있다. 잘 버티면 지금까지처럼 집도 안정되고 가족들 모두 집 밖에서 방황할 일도 없다. 물론 경제적 부담을 걱정할 일도 없다. 마음은 개운하지 않지만.
여러 일이 한꺼번에 다가올 때 상담에서 활용했던 기법을 내게 적용해 본다. 중요하고 긴급한 일, 중요하지는 않으나 긴급한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우선순위 매트릭스에 따르면, 집수리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는 않다는 결론이다. 집수리 못한다고 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지고 무너진 상황도 아니니. 그래서 버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