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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음 속에는 송곳이 있다"

[올해의 공익제보자상 제정 10년 기획좌담 ②] 류영준과 전경원

등록 2020.12.13 19:31수정 2020.12.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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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공익제보자상 제정 10년 기획좌담 ①] '세상을 뒤흔든 공익제보자의 멍에와 명예'(http://omn.kr/1qwac)에서 이어집니다.
 

전경원 국회의원 보좌관(2015년 의인상 수상, 2015년 하나고 입시비리 제보) ⓒ 참여사회

  
가릴 수 없는 진실, 그 앞에서
  
이상희(아래 이): "류영준 선생님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진실의 문을 열기로 한 제보를 하기로 한 결정타가 분노였다'고 했는데, 그 분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요."

류영준(아래 유): "공익제보자들의 제보 동기는 여러 가지겠지만, 누구나 참을 수 있는 사실이 있고 '이것까진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걸 참으면 내가 죽느니만 못하겠다' 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임상시험이었죠. 그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의도가 좋고 절차만 잘 지키면 괜찮은데, 그 사람은 동기가 너무 불순했죠. 어떻게든 빨리 임상을 성공시켜서 노벨상 탈 목적으로 달리니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거죠. 지금도 사회생활 하다 보면 세상에 온갖 나쁜 일이 참 많지만, 생명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더라고요. 제 (분노의) 기준은 어쨌든 생명, 사람 목숨, 뒤돌아봐도 그건 확실한 기준이었던 거 같아요."

: "2013년에 영화 <제보자>가 만들어지면서, 선생님이 세상 밖에 드러내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학회를 설득했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황우석 논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던 건가요."

: "마무리 정도가 아니고, (논쟁을) 그대로 덮었던 거죠. 제보 후에 한 8~9개월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니까 세간에서는 빨리 기소해서 잊고 싶었을 거고, 어차피 재판에서 가려질 거라면서 결국 덮었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다시 나가는 순간 그 덮어놨던 게 그대로 올라와서 폭발하더라고요.

제가 과학자들을 먼저 설득했던 이유도, 그래도 과학자들이니까 팩트 앞에서 터무니없이 우기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우군으로 만든 후에 같이 싸우려고 먼저 설득한 거죠. 그러다가 끝판왕까지 나와서 저를 고소하는 바람에."
  
: "그 고소 건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 때 줄기세포 연구에 황우석씨가 관여된 부분이 드러나면서, 2016년 말 결국 황우석씨가 류 선생님을 고소했는데 그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 "사실 저는 그렇게 피해를 당해도 누구 하나 고소·고발 안 했거든요. 근데 황우석이 저를 고소하니까 '올 게 왔구나,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마무리 짓자' 이런 생각이 강했죠. 뭐랄까, 저는 좀 당당하다고 할까, 어찌 보면 잘 됐다, 이번에야말로 대단원의 막을 좀 내렸으면 좋겠다 싶었죠. 운명 같아요, 일련의 일들이."

: "전경원 선생님도 당시에 정말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공익제보 이후에 선생님이 작사한 하나고 교가까지 바꿨다고 들었어요."
  
전경원(아래 전): "당시 하나고 설립추진단장이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었는데, 저를 포함한 여섯 명을 개교준비위원으로 뽑아서 교가 작사에 한 번 참여해보라고 했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서 작사했는데 제 가사가 선정된 거죠. 나중에 들어보니 작곡가분이 전문 작사가들한테 몇백 만 원 씩 주고 맡겨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여기 선생님이 쓴 가사로는 작곡할 수 있겠다고 해서 선정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나 긍지가 있었는데 점점 학교가 망가지는 걸 보니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싸웠는데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저한테 교가 가사를 바꾸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게 교가 가사까지 바꿀 일이냐, 그럼 여태까지 이 노래를 부르고 졸업한 아이들은 뭐가 되고, 지금 재학 중인 애들은 매일 부르던 교가가 바뀌는 건데 그래도 되는 거냐고, 그때 받은 충격은 굉장히 컸어요.

그러고 나서 해직됐다가 다시 복직해서 학교 행사에 갔는데 제가 5년 동안 듣던 교가가 바뀌어 있으니까, 그걸 듣는 것도 참 고통스럽더라고요. 교가까지 바꾼 건 정말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원래 가사가 훨씬 좋다고. (웃음)."
  

류영준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2014년 의인상 수상,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제보) ⓒ 참여사회

  
: "교가를 작사할 정도로 애정했던 학교인데, 그 안에서 문제제기를 결심했을 때는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가 있던 건가요."

: "그렇죠. 저는 될 거로 생각했죠. 근데 지금 보면 그 공포는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11월 15일에 MBC <스트레이트>를 보는데 론스타 관련 보도에 그 이사장 얘기가 또 나오더라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랑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라는 연줄이나 배경을 내세워서 금융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니까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봤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기흥에 있는 하나은행 연수원에서 교직원 연수를 했는데 마침 은행지점장들 회의가 있었나 봐요. 그 앞에 검정 세단들이 쫙 세워져 있는데 마치 조폭 영화처럼 도열해서 인사하더란 말이죠. 그런 거에 익숙한 사람한테 평교사가 와서 학교에 대해서 '이사장님 이러시면 안 된다', '왜 알면서 방조하느냐', '이건 잘못된 거 아니냐' 이러쿵저러쿵 막 따지니까 황당했을 것 같아요."

: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느낄 때 보통은 포기하게 되잖아요. 그것까지 넘어서게 한 건 어떤 힘이었을까요?"

: "근데 제가 알고 있는 진실이란 게 있잖아요. 그걸 왜곡하고 굴종을 요구할 때는 도저히 굴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분이 저를 앉혀놓고 조용히 학교를 떠나라, 지금 떠나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못 견디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순간 '알겠습니다. 다른 학교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두고두고 제 인생의 오점이 될 거 같았어요.

부정입학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있고, 2년 동안 권력자 아들이 학교에서 한 행동을 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데 문제제기 했다는 이유로 제가 떠나버리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봐라, 저런 얘기 하면 결국 쫓겨난다, 저럴 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야' 애들이 그런 경험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 또 권력자가 부당한 행보를 보였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파면당할 때 당하더라도 갈 때까지 가보자, 나중에 학원 강사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 던지고 싸우니까 어느새 구도가 불리하지 않게 돌아가더라고요. 갑자기 국정감사에서 교육상임위 위원들이 문제를 크게 다뤄주고, 참여연대랑 호루라기재단에서도 도와주고, 은평지역 주민들이 매일 아침 학교 앞에서 피켓 시위도 해주시고, 그런 힘이 없었으면 아마 혼자 싸우다가 포기하고 쓰러졌겠죠."
  
: "하나고가 자사고다 보니까 일반 학교보다도 학부모들의 반대가 더 심했을 것 같아요. 당시 학부모들이 선생님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을 때 고립감은 꽤 크셨겠어요."

: "정말 죽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죠. 제가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정 옷을 입은 어머니들이 쫙 서 있어요. 제 자리 사방에는 검정 도화지에 하얀 글씨로 '전경원은 사직하라, 전경원은 물러가라' 피켓이 있고요. 어머니들이 제 시간표를 다 아니까 조를 짜서 제가 수업 있을 땐 어디 가서 쉬다가 수업 끝날 때쯤 와서 계속 침묵시위를 하는 거죠. 문제는 거기가 교무실이잖아요. 그때 제가 한창 수시 추천서를 써줄 때였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교감 선생님께 '학부모님들 의사 표현은 존중하지만 교무실은 적절한 공간이 아닌 거 같다, 제발 시위를 다른 곳에서 하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보냈어요. 그랬더니 '힘드신가요? 학교도 힘듭니다'라고 답이 오더군요. 그런 시간이 몇 달 지속되니까 나중엔 불면증에 시달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학교 가서 겪어야 할 모멸감과 수치심부터 떠오르더라고요.

그냥 사직서 쓰면 끝날 일인데, 또 그러자니 마음으로 온전히 승복이 안 되고. 그래서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틴 거죠. 5년이나 지났는데 지난주에 또 고발인 조사 갔다 왔어요. 이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 "저희 센터로 들어오는 공익제보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이 사학비리예요. 근데 이분들은 단지 보호뿐 아니라 제보가 진실로 규명되고 가해자가 책임지고 처벌받기를 바라는데, 저희가 사학운동을 하는 센터는 아니다 보니까 늘 안타깝고 운동의 한계를 느껴요. 사학비리 제보를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저도 겪어보고 나니까 선뜻 용기 내서 제보하라고 말하기가 곤혹스러워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진실이 있는데, 그걸 외면하거나 침묵했을 때 지게 되는 마음의 짐이나 빚이 있을 거고, 두렵긴 하지만 그걸 바꿔보기 위해 시도하고 노력했을 때 겪게 될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 있을 거예요. 그 둘을 비교해보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침묵이나 외면을 선택했을 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더 마음의 짐이나 부담을 덜게 될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또 교육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문제를 발견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으려면 어쨌든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정상적인 사회라면 문제제기만으로 불이익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요. 주변을 돌아보면 분명히 도와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 고민하시기보다, 참여연대나 호루라기재단 같은 곳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안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송곳이 있다


: "제보자들은 제보 이후에 엄청난 삶의 변화를 겪게 되잖아요. 그런데 사회적 낙인과 편견 속에서도 어쨌든 내 삶을 영위해야 하는 거고, 고꾸라지려고 할 때마다 계속 나를 세워서 그 길을 덤덤하게 걸어가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떤가요."

: "그 뭔가가 진짜 있거든요. 마치 자전거 처음 배울 때 느낌이랑 비슷하달까요. 처음엔 계속 넘어지다가 어느 순간엔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요.

공익제보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예전에는 저 사람이 무슨 회장이고, 대통령의 절친이고, 금융권의 뭐래, 이러면 괜히 그 앞에서 말하기 거북하고 불편하고, 그런 권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어요.

이런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약간 그런 두려움이 좀 없어진 거 같아요. 이젠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권력이나 권위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저 사람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잘못된 건 말할 수 있게 된 거. 이런 게 공익제보 경험을 통해서 학습된 소중한 가치죠. 그런 게 살아가면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동양 고전에 노추(老錐)라는 말이 있어요. 오래된 송곳이라는 뜻인데, 송곳은 끝이 뾰족하잖아요. 그게 악력을 모으면 바위도 뚫거든요. 그 한군데로 모으는 힘이 저는 진실 같아요. 제가 경험해봐서 알지만, 진실의 힘은 대단히 강력해요. 공익제보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마음속에 송곳이 있을 거예요. 아주 큰 강력한 적이라도, 딱 집중하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 박영록

  
: "그런 점에서 앞으로 저희 공익제보지원센터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공익제보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척박한 영역인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잠재적인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참여연대가 해온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우선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보자들이 하는 문제제기가 대개 정당한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큰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수렴하고 연대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공익제보자상이 견지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일 년에 한 번 행사 때마다 늘 제보자들이 말씀하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그걸 효율적으로 수용할 방안을 더 많이 고민해주면 좋겠어요."
  
: "저는 '역할분담이 좀 필요하다' 이런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지금 서울시교육청 내 공익제보센터에 시민단체 출신 베테랑분들이 꽤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보자들이 찾아가면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대요. 시민단체 찾아가면 이런저런 도움 받을 수 있다고.

물론 제보자 보호 관련 법률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 초기고, 미비하기 때문에 여전히 (역할을) 서로 조금씩 미루는 경향이 보이기도 해요. 제 눈에는. 제도적인 부분이 충족될 때까지는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 하는데, 국가기관의 역할, 시민단체의 역할이 각기 다를 테니 역할분담이 잘 되면 빈틈없이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 사람의 제보자를 두고 그걸 통합하고 연결시킬 역할이 필요하고, 그건 제가 볼 땐 시민단체가 비공식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좀 맡아서 '역할분담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편집팀에서 정리하고, 사진은 박영록 자원활동가가 촬영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공익제보자 #참여연대 #의인상 #올해의공익제보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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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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