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8일 정부 공청회가 열리는 국회 바깥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피해자가 아닌 '성적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국 사회는 '성'을 부끄럽고,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다룬다. 한편에선 n번방과 같은 성착취 사건, 데이트폭력, 성폭력 등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순수한 피해자일 때 받아들여질 뿐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성적 권리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성적 권리는 다른 권리와 다르게 부차적이거나 어느 정도 사는 사람, 사생활의 문제, 이런 식으로만 상상이 돼요. 낙태죄를 매개로 보다 보니 성적 권리가 너무 중요한 기본권이고, 사회적 권리더라고요. 제대로 주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삶의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성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다른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예를 들어 청소년은 콘돔을 살 수 있지만, 마치 그것이 청소년에게 위험한 물건인 것처럼 인식되죠.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권리가 없기 때문에 수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거나요. 노숙인, 빈민도 자기가 통제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놓여요. 그래서 성적 권리가 사생활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 재생산 권리가 아니라 '정의'라는 이유도 법적으로 나열되는 권리가 아닌 이 권리가 보장될 수밖에 없는 조건, 사회정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재생산 정의'를 얘기해야 해요."
여성의 노동권과 재생산권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기획 필요
"사실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재생산권을 분리된 영역으로 보기 때문에 일·가정 양립 정책 같은 게 나온 거죠. 일은 직장에서만 하는 거고, 집에서 하는 건 가정일이기만 한 거예요. 무상으로 가정에서 여성 노동에 모든 걸 전가하고 있는데,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유산·사산휴가, 출산휴가도 일하다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하는 노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가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휴가에 대한 권리, 노동시간 단축만이 아니라 모든 의제에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포함돼야 해요.
작업대의 높이, 구조 이런 부분에서 신체적인 차이들이 어떻게 고려되고 있는지, 여러 안전장치들 임신한 여성의 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노동시간에서 돌봄 노동이나 재생산 노동에 대한 고려는 어떤 식으로 배치가 되는지 이런 것들이 여러 노동운동 안에서 이야기될 수 있어야겠죠. 각각의 의제 안에 재생산권에 대한 고려가 포함돼서 같이 하나씩 되어야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을 거예요. 유의할 점은 여성에게 유산·사산휴가를 줄 거냐, 말 거냐 식으로 얘기되어선 안 돼요. 재생산권의 문제가 마치 이 휴가를 보장하면 다 되는 걸로 생각될 수 있죠. 임신 중지를 할 때 일하는 여성이 어떤 경험을 할 것인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 사람의 노동시간 문제, 조건의 문제, 경제적 문제, 지역 의료기관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 사유리씨의 출산에 대해서도 의미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중지 논의와 연결되는 일이며, 정상가족 문제, 재생산권, 섹슈얼리티 통제의 문제 등 국가가 어떤 생명을 중심으로 선별하고 자격을 부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경제적 조건만 아니라 결혼 관계 바깥의 여성이 자기 삶을 꾸리면서 아이까지 잘 양육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걸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와중에 보육에 대한 부담은 여성에게 그대로 있죠. 계속해서 노동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여성은 이걸 다 혼자 감당해요. 일·가정 양립, 육아휴직처럼 저출산 정책이 쏟아지는데 사실 이건 굉장히 계급적 문제거든요.
정부의 개정안은 일단 상담을 받고, 상담받으러 가서 확인서를 받아 24시간 숙려 시간을 갖고 병원에 찾아가야 하는데, 의사가 거부하면 다시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해요. 그런데 이걸 현실적으로 풀어보면 굉장히 심각하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이 상황을 겪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런 얘기를 더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해요."
지난 12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낙태죄 공청회를 개최했다. 낙태죄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이를 형법 개정안 심사에 참고하는 자리라고 취지를 밝혔으나, 실제 공청회 진술인의 구성원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혀 담지 못하게 이뤄졌다. '낙태죄 비범죄화'를 제대로 진술할 수 있는 진술인이 8명 중 단 2명에 불과했다. 이마저 본회의를 단 하루 앞둔 상황에서 열리는지라 우려는 더욱 컸다.
결국 공청회 자리가 아닌 '국회 바깥'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08년 동안 여성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국가가 여전히 여성의 몸을 얼마나 수단화하고 있는지, 인구정책의 도구로만 삼으려 하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올해 법 개정이 잘 되면 좋겠고, 형법이 폐지되고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좋겠어요. 임신·출산에 관한 문제 차원만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경제적 문제, 노동의 문제이기도 한지를 말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어요."
그간 낙태죄 폐지 운동에 담아 왔던 여성의 경험을 배제하고 열린 정부의 공청회 면면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재생산권이 만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국가, 자본의 이익이 아닌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기록과 목소리일 것이다. 또한 여성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이라는 구호가 성적 권리, 재생산권과 만날 때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 낙태죄 폐지의 운동 속에서 감히 상상해보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공유하기
낙태죄 폐지, 여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을 위한 첫걸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