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들에게 '꼭 통일을 이뤄 달라'고 유언한 정효순 통일 어머니가 11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자주통일비보존회
"나는 끝내 평화통일을 보지 못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 되었지만, 여러분 세대에는 반드시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꼭 이뤄주세요"
젊은 세대들에게 '꼭 통일을 이뤄 달라'고 유언한 지송(志松) 정효순 통일 어머니가 11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정효순 어머니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고 정효순 이름 앞에는 '통일 어머니', '대전·충남 지역 혁신정당 운동의 산증인', ', '대전·충남 지역 민주화운동의 원로'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와 관리들이 14세 이상인 '처녀 사냥'을 시작하자 그는 서둘러 결혼했다. 해방되기 바로 전해인 1944년 결혼했지만, 남편은 결혼 한 달 만에 일본의 규슈 탄광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돌아온 남편과 때늦은 신혼을 맞아 하나뿐인 아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아이 돌잔치 뒤 두 달 만에 남편이 눈을 감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6월.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스쳐 간 자리는 참혹했다. 죽은 엄마 등에 업힌 채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았다. 우는 갓난아이를 눈밭에 놓고 피난 행렬을 따라가 버리는 부모도 있었다. 그에게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악한 행위였다. 전쟁의 깊은 상흔은, 그를 통일을 위한 길로 이끌었다.
그는 27세 때 조봉암이 이끄는 진보당에 가입해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사회대중당 대전 2지구당 위원장, 충남 3지구당 위원장, 충남대전을지구당위원장, 통일사회당에서 청춘을 보냈다.
1978년, 통일사회당 충남도지부 현판식에서 "지금 선거는 80%가 부정선거입니다. 이런 식이면 남한이 북한과 뭐가 다릅니까? 박정희 정권이나 김일성 정권이나 똑같아요, 둘 다 물러나야 합니다"라고 연설했다. 이 일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국가원수모독죄 등 혐의로 구속됐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전두환 정부 때는 대전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결성을 주도해 의장을 맡았다. 1988년 전국적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가 창립되자 중앙위원, 1995년에는 범민련 대전·충남본부 의장을 맡았다. 그러다 1997년 김영삼 정권의 통일운동 탄압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배포, 안기부에 의해 구속됐다. 두 번째 구속이었다. 이적단체인 범민련 구성과 가입, 이적 표현물 소지 탐독, 북한 수재민 돕기 성금을 모아 북한에 송금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사업은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진상규명이다.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골이 묻힌 골령골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진상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