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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대 남북공동발굴 '12년' 기록, 국민께 보고합니다

[인터뷰] '개성만월대 디지털기록관' 추진한 김경순·심성보... "교사분들, 꼭 활용해주세요"

등록 2020.12.31 17:58수정 2020.12.3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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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대화의 문이 닫힌 지 2년이 돼갑니다. 만월대 조사는, 때때로 남북관계 경색의 격랑 속에서도 신뢰와 대화로 12년간 줄기차게 이어져 온 남북교류협력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특히 그 결과를 '디지털 기록관' 형태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입니다. 

발굴에 12년, 기록관 구축에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이 일을 끈질기게 밀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는 향후 남북 간 교류의 문을 다시 여는 데에도 많은 영감과 동기를 줄 것입니다.[기자말]
 

개성 만월대(고려정궁 터) 남북공동발굴 디지털 기록관 ⓒ 만월대기록관


"만월대 디지털 기록관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퍼주기'가 아니라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쓰는 일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거죠. 국민들에게,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보고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만월대 기록관 구축사업의 책임을 맡은 심성보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의 말이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 디지털 기록관'(www.manwoldae.org, 이하 만월대 기록관)이 지난 22일 개관했다.

개성 만월대는 약 1100년 전 세워진 고려태조 왕건의 궁궐터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이하 만월대 조사)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추진돼왔다. 남북 공동조사단은 8차에 걸친 조사로 궁궐 건물지 40여 동을 확인했고 금속활자 및 청자, 장식기와 등 유물 1만 7900점을 발굴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안갯속 같은 남북관계 속에서도 12년간 꾸준히 이어져 온 민간교류. 만월대 조사 사업은 '디지털 기록관' 개관을 통해 또 다른 시작의 가능성을 열었다. 만월대 기록관 구축사업은 만월대 조사 사업의 성과와 의미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통일부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2017년부터 추진해왔다.

지난 20일 서울 신문로1가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 심 교수와 김경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획홍보부장을 만났다. 김 부장은 만월대 조사 초기부터 지원 역할을 맡아왔다. 아래는 두 사람과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만월대 기록관 구축사업의 책임을 맡은 심성보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 최규화

 
2007년 첫 조사... 정부가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만월대 사업은 계속됐다

- 어떻게 해서 남북 공동발굴조사 대상지가 개성 만월대로 선정됐나요?

김경순(이하 김) : "2005년 북측에서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어요. (2013년 만월대를 포함한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 기자 주) 그해 11월 '개성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남북공동 학술토론회 및 유적답사'가 개최됐고, 공동발굴 조사도 제안됐죠. 2006년 2월에 만월대가 적합하겠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이어 6월에 조사 합의서가 채택됐어요.


2007년 첫 조사에 들어갈 때는 개성공단도 초창기여서 인프라가 많지 않았어요. 조사단이 한번 들어가면 짧아도 두 달은 머물러야 하는데 생활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협력과 평화의 기운이 형성돼 있었고, 부족하지만 공단 건설공사를 진행 중이던 현대아산에서 컨테이너 숙소를 제공해줘서 가능해졌어요."

심성보(이하 심) : "만월대 조사의 시작은 노무현 정부 때였잖아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져 온 남북협력 사업이 만월대 조사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정도밖에 없어요. 이른바 진보적 정부든 보수적 정부든, 만월대 조사 사업은 부정할 수 없는 남북협력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거죠."

- 만월대 기록관 구축은 언제부터 추진돼온 건가요?

: "발굴한 유물은 북측에 두고 사진, 영상, 3D 스캔 자료는 남북이 공유하기로 했지만, 그 데이터들을 마땅히 정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외장하드디스크에 그저 쌓아뒀어요. 2017년에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을 해보자는 데 통일부가 동의하면서, 우선 자료 정리 사업을 하게 된 게 만월대 기록관의 시작이었어요.

그동안 쌓인 60만 개 파일을 정리한 다음에, 자료를 학술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유구 DB와 유물 DB를 구축했죠. 그다음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기 위해서 IT나 그래픽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됐어요. 크게 보면 자료 정리 → 유구·유물 DB 구축 →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순으로 4년 동안 진행됐죠.

보고서나 도록을 만드는 데 사용된 파일들을 잘 정리해서 이후에도 체계적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 고민이 유구·유물 DB를 만들자는 걸로 이어졌고, 그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 사업을 키운 거죠. 예산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당시 작업에 참여한 분들의 시간과 노력을 쥐어짜서 만든 겁니다.(웃음)"
 

2007년 발굴조사 당시 비석받침을 출토하는 모습 ⓒ 통일부

 
12년간 남북 공동으로 생산한 자료, 여기 공개합니다

-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성과가 디지털 기록관으로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것,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심 : "우선 전문가들이 관련 연구를 지속·심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죠. 앞으로 발굴이 계속된다고 할 때, 그것이 지난 12년의 역사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큰 의미죠.

남측에서 만월대 유물(복제품) 전시를 할 때마다 관람객들이 '12년 동안 이런 사업이 계속돼 왔단 말이에요? 잘 몰랐어요'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북협력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고, 공동의 노력으로 1100년 전 고려의 유물이 드러났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죠. 만월대 기록관 구축으로 그것들을 국민들에게 항상 설명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진 겁니다."

김 : "지금까지 남북 민간교류는 공연이나 관광을 제외하고는 전문가 교류 중심일 수밖에 없었어요. 만월대 조사도 마찬가지인데, 디지털 기록관을 통해서 그 성과가 대중화되는 계기를 만든 거죠. 전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컸기 때문에, 그런 한계들을 극복하면서 성과를 대중화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조사가 거듭될수록 조사단이나 학계에서 연구에 대한 갈증이 계속 생겼어요. 사실 고려시대는 다른 시대에 비해 연구자도 많지 않은 편이에요. 고려의 도읍은 북측에 있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죠. 저희 사업만 해도 금속활자부터 해서 세분화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무궁무진해요. 만월대 기록관은 그걸 위한 자료 창구죠. 활발한 연구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만월대 기록관 구축 사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심 : "고고학자, 미술사학자, 도자 전문가, 와전 전문가, 건축학자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데이터베이스의 언어로 같이 소통해야 하는 거예요. 다른 학문 사이의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많이 느꼈어요. 기와 조각 하나, 도기 조각 하나 등 발굴된 유물 하나하나를 두고도 모두 그런 소통의 과정이 있었어요.

만월대 기록관은 각계 전문가들이 치열하고 성실한 소통의 결과로 만든 남북협력 사업 성과입니다. 남북협력 예산을 '퍼주기'라고 비판하기도 하잖아요. 만월대 기록관은 '퍼주기'가 아니라 의미 있는 곳에 돈이 쓰이고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거죠. 국민들에게, 미래세대에게 보고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만월대 조사 초기부터 지원 역할을 맡아온 김경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획홍보부장 ⓒ 최규화

 
이야기 영상으로 쉽고 유익하게... "교사분들, 꼭 활용해주세요" 

- 만월대 조사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심 : "스토리텔링 영상을 여러 개 만들었어요. 발굴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단계를 통해서 전문적인 성과들이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위해서 남북은 어떻게 협력했는지 등을 영상으로 쉽게 보여주는 거죠.

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교수학습자료를 만들었어요. 교과서 분석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서 온라인 답사 코스 세 개를 꾸몄어요. 특히 요즘 비대면 수업이 많으니까 학생들한테 과제로 내줄 수도 있고 영상 수업도 할 수 있겠죠. 계기 수업으로 만월대 기록관을 활용해주시기를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 만월대 기록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유물 몇 가지만 소개해주십시오.

김 : "2007년에 출토된 대형청자가 있어요. '청자 음각 보상당초문 대형기'라고 부르는데, 높이 65cm, 지름이 22cm나 되는 큰 원통형인데 모양이 꼭 죽부인같이 생겼습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이런 모양의 청자는 나온 적이 없어요. 누가 어디에 썼는지도 역시 알 수 없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이형청자', 모양이 다른 청자라고 불렀어요. 상당히 특이한 유물이죠.

고누놀이판도 재미있어요. 기와에도 바닥전에도 고누놀이가 새겨진 것들을 발견했는데, 누가 감히 궁궐에서 쇠꼬챙이로 긁어서 판을 그리고 놀았을까, 당대에 그려진 것이냐 나중에 그려진 것이냐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출토 위치, 다른 출토 유물과의 관계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추정하기로는, 궁궐 지을 때 일하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깨진 기와판에 고누놀이를 그려서 놀았을 것 같아요."
 

만월대 기록관에서 볼 수 있는 대표 유물. 2007년 출토된 대형청자(왼쪽)와 2015년 출토된 금속활자. ⓒ 통일부

 
- 과거 5·24조치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등으로 조사 도중 돌아와야 했던 적도 있었고, 한두 해씩 조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2018년 이후 조사가 중단된 상황인데, 조사 재개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요?

김 : "2019년 이후 남북 민간교류의 대화 창구도 모두 막힌 상황입니다. 일단은 코로나19 상황부터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2019년 4월 16일 만월대 남북 공동발굴을 위한 장비의 대북반출에 대한 제재 면제 신청이 승인됐기 때문에, 언제든 분위기만 형성된다면 바로 재개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심 : "아마 북측의 주요 관계자들도 만월대 기록관을 알게 될 거예요. 새로운 차원의 교류협력이 이 기록관을 통해 생길 수도 있겠죠. 만월대 교류협력의 디지털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남북 학자들이 디지털 아카이브를 활용해 새로운 차원의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남북교류 막혔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길게 보고 투자해야

- 앞으로 만월대 조사와 같은 사업이 더 활발히 전개되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들이 더 필요할까요?

김 : "남북교류는 단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남북교류 초반 일회성 사업 위주로 진행되던 것이 이미 겨레말큰사전, 만월대 조사 사업이 시작되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장기적·단계적 교류 사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남북교류가 정체되다 보니 실현되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제대로 실현해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월대 조사 같은 경우도 늘 듣는 질문이 '올해 도자기 몇 개 나왔어요?'였어요. 단기적인 실적을 중심으로 보기보다 길게 투자해가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 만월대 조사 사업과 만월대 기록관 구축 사업이 두 사람에 개인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요?

심 : "기록관리가 남북 교류협력에 도움이 된 사례가 많지 않은데, 이번에 선례가 생겼다는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교류협력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아카이브를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발굴부터 기록관 구축까지 여러 학자들의 열정에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김 :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죠. 발굴 현장에서 조사자가 기록하는 '야장(野帳)'이 연구의 가장 기초 자료인데, 가깝게는 '디지털 야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상상할 수도 있죠. 남북의 학자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가지고 토론도 연구도 같이 하는, 전에 없던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렸으니까요."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2007년부터 2018년까지 ⓒ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만월대 #개성만월대 #만월대기록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북공동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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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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