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처럼 달리는 열차가 나를 슬프게 한다

[박도의 치악산 일기 2화] 새로 개통한 ‘KTX-이음’ 호를 타다

등록 2021.02.01 13:43수정 2021.02.02 15:0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월 5일부터 중앙선에 새로 투입된 ‘KTX-이음’ 호 .
지난 1월 5일부터 중앙선에 새로 투입된 ‘KTX-이음’ 호 .자료사진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100여 킬로미터라고 한다. 내가 원주에 정착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서울과 적당한 거리 때문이다. 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나 지난날 가까웠던 이가 보고 싶을 때는 이따금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곤 한다. 그뿐 아니라 밤새워 글을 쓴 다음 날은 중앙선 남행열차를 타고 경북 풍기로 가서 그곳 온천에 몸을 푹 담근다.


그동안 원주역에서 청량리역까지는 무궁화열차로 1시간 30분 내외, 풍기까지는 그보다 조금 더 걸렸다. 그때마다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열차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그 절경을 바라보면 세상 번뇌도 잊을 수 있고, 문득문득 새로운 영감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사는 치악산 밑 마을에는 중앙선 철길이 깔려 있다. 내 집 창을 통해 이따금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소년처럼 그곳을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여행처럼 즐거운 인생도 없다'는데 그 열차를 바라보노라면 어딘가로 떠나고픈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가벼운 차림으로 치악산 구룡사 계곡, 아니면 남한강 강둑, 또는 열차를 타고 동해안 강릉 경포바다를 찾기도 한다.

그동안 중앙선 철길은 단선이었다. 원주에서 남행열차를 타고 반곡역을 지나면 곧 루프식 똬리 터널이 나왔다. 또 단양역에서 희방사역 사이에는 또 다른 똬리굴도 있었다. 이 루프식 타원형 터널은 한참을 지나도 차창 밖 풍경은 같은 모양새로 다만 철로의 지대 높낮이만 다를 뿐이다.

이런 예스런 중앙선 철도가 지난 2021년 1월 5일부터 청량리~안동 간 복선철도 개통과 더불어 'KTX-이음' 호 운행으로 기존의 중앙선은 그 면모가 새로워졌다. 그와 함께 기존의 중앙선 단선도 새 복선 철로에 밀려났다. 그리하여 내가 이따금 찾아갔던 간이역 반곡역사도, 희방사역사도, 루프식 똬리터널도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겨 됐다.

지난날 죽령 루프식 원형의 똬리굴 대신에 이제는 일직선 쌍갈래 철로가 터널로 관통하고 있다. 그 철로 위를 'KTX-이음' 호가 기적도 없이 총알처럼 달린다.
  
 치악산 밑을 지나는 단선 중앙선 철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퇴물이 됐다.
치악산 밑을 지나는 단선 중앙선 철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퇴물이 됐다.박도
 
삶의 터전을 잃어가다


아직도 호기심이 많은 소년과 같은 나는 지난 1월 12일 새로이 세워진 원주역에서 'KTX-이음' 호를 타고 청량리로 갔다. 무궁화 호를 타면 도중에 보통 4~5 정거장은 쉬어 갔다. 하지만 'KTX-이음' 호는 새로 생긴 서원주역에서만 잠시 정차할 뿐, 이후 청량리역까지 무정차로 불과 49분 만에 도착했다.

원주 청량리행 'KTX-이음' 호는 지난날 무궁화 열차보다 30~40여 분 시간이 단축된 듯하다. 중앙선 개통 초창기의 증기기관차에 견주면 아마도 2시간은 더 단축됐을 것이다.


그날 청량리역에서 'KTX-이음' 호를 타고 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간이 단축된 만큼 우리는 행복해지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았다. 뭔가 정신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소중한 또 다른 그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오래되고 낡은 것은 사라져 가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어느새 골동품이 된 나는 점차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듯하다. 현대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고 편리한 것만 쫓나 보다. 그러다 보니 산에 터널을 마구 뚫고, 바다에서도 섬과 섬을 다리로 잇거나 해저터널로 연결시키고 있다. 곧 우리가 편리해지는 만큼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개발로 그동안 지구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 없나 보다. 그 반격 신호탄으로 이즈음 코로나19와 같은 괴질 바이러스를 지구촌 곳곳에 퍼뜨리는 건 아닐까? 

이전의 무궁화보다 훨씬 더 쾌적하고, 더 빠른 'KTX-이음' 호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망상에 젖다가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살려는 인간들의 무한한 탐욕은 마침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점차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 나야 살만큼 살았지만 다음 세대들의 삶이 심히 걱정이 된다.

문득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이 한 대목을 삽입하고 싶다.

"바람처럼 다가왔다가 총알처럼 사라져 가는 'KTX-이음' 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박도의 치악산 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3. 3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4. 4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5. 5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