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내기와 얼음새꽃

한자말과 일본말을 밀어낸 우리 말

등록 2021.02.22 09:06수정 2021.02.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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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시 옛 모습(동해시청 누리집)
동해시 옛 모습(동해시청 누리집) 동해시청

동해시청 동남쪽에 있는 샘, 찬물내기

동해시는 옛 명주군 묵호읍과 옛 삼척군 북평읍을 묶어 1980년 시가 되었다. 묵호읍은 묵호항을 중심으로 한 어촌이고 북평읍은 뒤뜨르(삼척 시내로 보면 북쪽에 있는 들)라는 말에서 보듯 농촌이었다. 묵호읍과 북평읍 중간 지점이라고 할 샘골(천곡동)에다 도로를 내고 시청과 교육청, 경찰서, 소방서, 선거관리위원회 같은 기관을 열고 은행, 터미널을 열었다. 말 그대로 산을 깎아내고 개울을 덮어 허허벌판 같은 데다 새롭게 시가지를 낸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천곡동이다.

천곡동 동해시청에서 동남쪽으로 400미터쯤 가면 샘이 있다. 바위 사이로 사철 내내 샘이 솟아나는데, 비가 와도 늘지 않고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으며 여름엔 차고 겨울엔 따뜻했다. 초록봉에서 내리는 물이 땅속으로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샘으로 솟아난다고 한다. 뼈가 시릴 만큼 찬물이 난다고 해서 샘 이름이 '찬물내기'다.

한자로는 '냉천(冷泉)'이라고 하는데 요즘엔 '냉천'보다 '찬물내기'를 더 많이 쓴다. 토박이말이 한자말을 밀어낸, 드문 사례라고 하겠다. '내기'는 움직씨 '난다'를 이름씨꼴로 쓰면 '나기'가 되는데, 시골내기, 풋내기, 냄비에서 보듯 역행동화가 일어나 '내기'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복수초, 이름마저 차가운

이 찬물내기 둘레 산비알에 '복수초'가 자란다. 복수초는 대개 3~4월에 꽃을 피우지만 이곳에서는 1월부터 꽃을 피운다. 요즘엔 얼음 사이에서 피는 꽃이라고 '얼음새꽃'이라고 하거나 눈을 삭이고 올라오는 꽃이라고 '눈삭이꽃'이라고도 하는데, '얼음새꽃'이 더 지지를 받는 모양새다. 
 얼음새꽃과 찬물내기
얼음새꽃과 찬물내기이무완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윤옥)을 보면 '복수초'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학자인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쓴 <조선식물명휘>(1922)에서는 우리 말 이름 없이 'Hokuju-sò フクツソウ(후쿠주소) 側金謹花(측금근화)'로만 적었는데 1937년 조선박물연구회 식물부가 편찬한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와서 '복수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 땅 곳곳에 이 풀이 자랐을텐데, 해마다 어느 꽃보다 먼저 샛노란 꽃을 피워 봄을 알렸을텐데 어찌 우리 이름이 없었겠는가. 애초 <조선식물명휘>는 우리 말이 서툰 일본학자가 쓴 데다 알뜰히 이름을 찾으려는 마음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그 뒤 <조선식물향명집>을 낸 우리 식물학자들이 지역말을 찾아 우리 이름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좀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늦었지만 '복수초'라는 살벌한 이름보다는 '얼음새꽃'이라는 이름을 쓰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얼음을 녹이고 피는 풀꽃 특징도 잘 잡은 이름이다.

※ '복수초'를 한자로는 '福壽草'로 쓴다. 글자로만 보면 행복(福)과 장수(壽)를 뜻하는 것이지만 '앙갚음, 되갚아줌' 뜻이 있는 '복수'란 낱말도 있어서 꽃 이름으로는 아름답지 않다. 일본에서는 복수초말고도 원일초(元日草), 삭일초(朔日草)라고도 한다.
#찬물내기 #얼음새꽃 #동해삼척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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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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