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홍합, 참담치)와 지중해담치, 뉴질랜드초록담치 비교(크기도 크기지만 섭은 각정 부위가 살짝 휘었다.)
이무완
'지중해담치'와 '섭'과 '뉴질랜드초록담치'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담치는 격판담치, 비단담치, 지중해담치, 진주담치, 동해담치, 털담치 뿐만 아니라 민물담치까지 다 헤아리면 스무 종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지중해담치와 진주담치는 학자들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하다.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는 종은 '지중해담치'와 '섭', '초록입홍합' 이렇게 세 가지다.
'지중해담치'부터 보면, 우리 나라 바닷가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까만 조개는 거의 지중해담치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지중해담치는 이름에서 보듯 본디 지중해와 서대서양 쪽에 살던 놈들이다. 화물을 실어나르던 배나 평형수에 지중해담치 유생이 섞여 우리 바다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한다. 일본에서는 1935년에 처음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우리 바다에도 그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 아무 데서나 잘 붙어 자라는 까닭에 지금은 우리 나라 앞바다 갯바위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남해 마산만과 가막만에서 양식으로 키우기도 한다. 우리가 홍합으로 알고 먹는 조개 대부분이 바로 '지중해담치'다. 양식 하는 까닭에 '섭'에 대면 껍데기가 매끄러우면서 얇아서 조금만 힘줘도 부서진다. 또, 섭은 껍데기 끝이 살짝 휘었지만 지중해담치는 곧은 편이다. (위 사진 참고) 지중해담치를 진주담치라고도 하는데 이는 종 분류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진주담치가 아니라고 해도 너나없이 한번 입에 굳어진 말을 바로잡긴 어렵다. 심지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조차도 '진주담치'만 표제어로 올려놓고 '지중해담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음은 '섭'이다. 흔히 '홍합'(섭)이라 하면 자연산이면서 어른 손바닥만한 놈으로 알고 담치는 자잘한 양식 무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섭은 껍데기에서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빛이 난다. 조가비가 두껍고 단단해서 어른이 밟아도 깨지지 않을 정도다. 지중해담치한테 밀려 앞바다 갯바위를 버리고 수심 깊은 곳에서 자라는 까닭에 따개비나 바닷풀 같은 게 조가비에 덕지덕지 붙어서 껍데기가 우툴두툴하다. 거의 어른 손바닥만하게 자라기 때문에 지중해담치에 대면 서너 배는 크다. 양식이 안 되기 때문에 해녀나 머구리들이 바다 밑에 들어가 캔다. 자연산 홍합인 '섭'을 달리 '참담치'라고도 한다. 지중해담치와 구별할 요량으로 생겨난 말이다. 이때 앞가지로 붙은 '참'은 '진짜, 토종'이라는 뜻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섭으로 국을 끓인다. 섭국을 맑고 칼칼하게 끓이기도 하고 고추장과 된장을 섞은 국물에 섭, 부추, 양파 따위를 넣어 얼근하게 끓이기도 한다.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는데 섭을 쫑쫑 다져서 참기름을 두르고 덖다가 거기에 미역을 넣어 조금 더 덖은 뒤 물을 부으면 보얗게 국물이 우러난다.
우리 말 사전에는 없지만, 뷔페 같은 데서 삶아서 내놓은 홍합이 있다. 조가비가 푸른 빛을 띤다. 이 홍합은 뉴질랜드에서 양식으로 키운 조개다. 영문으로는 'Green Lipped Mussel'이라고 하는데 이 말을 그대로 뒤쳐 '초록입(술)홍합', '그린홍합', '초록홍합' 따위로 일컫는다. '머슬'(mussel) 말밑을 캐보면 그리스말 '쥐'에서 왔다고 한다. 조가비가 마치 웅크린 쥐와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겠다. 이 조개 이름은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사람마다 달리 쓴다. 내 생각이지만 '뉴질랜드홍합'이나 '뉴질랜드초록홍합'이라고 쓰는 게 어떨까 싶다.
곁가지 같은 말이지만, '섭'을 보면 수염 같은 실이 붙어 있는데 이를 '족사'(足絲)라고 한다. 이것으로 갯바위뿐만 아니라 엉덩이 들이밀 자리만 있으면 배 밑바닥이고 나무고 가리지 않고 딱 달라붙는다. 한때 폐타이어에 붙여 지중해담치를 양식한다고 해서 들끓었던 적이 있다. 족사는 억세고 질겨서 도구를 쓰지 않고는 뜯어내기 어렵다. 재미난 것은 한번 붙은 곳에 평생을 살 것 같지만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싶으면 족사를 녹여 훌훌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고. 천하무적 같은 욘석들한테도 천적은 있는데 바로 불가사리다. 불가사리가 팔로 이리저리 섭을 힘을 주어 뒤적이면 조가비 사이 틈이 생기는데 이 틈으로 넣어 조갯살을 먹어치운다. 껍데기가 벌어진 채로 널부러진 담치들은 불가사리가 먹어치운 것이다.
우리 말 사전의 주권을 물어야할 때다
처음 생각으로 돌아가 묻고 싶다. '털격판담치'는 과연 누구의 말인가. 곧잘 소비자 주권을 말한다. 말도 마찬가지 아닐까. 말을 만들고 그 말을 오래도록 써온 사람은 '섭'이라고 하는데 생뚱맞게 '털격판담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궁금하다. 말에도 맛이 담기고 냄새가 배이고 풍경이 스며 있다.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깡그리 지운 말만 알뜰히 모은 사전이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물어야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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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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