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시 신작 소설 <녹색모자 좀 벗겨줘> 표지위화가 추천사를 썼고, 당대 중국 농민공의 설움을 잘 보여준다
달아실
3대에 걸쳐 자꾸만 꼬여가는 한 가문
국내에는 2008년 <언어없는 생활>과 <미스터 후회남>(원제:后悔录, 2005년 출간) 등이 번역되어 주목을 끌었는데, 이후 다른 작품이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2월에 14년의 공백을 깨고, <녹색모자 좀 벗겨줘>(원제 篡改的命, 2015년 5월 출간)가 번역 출간됐다.
원제는 <운명 바꾸기>인데, 제목을 <녹색모자 좀 벗겨줘>라고 한 것은 중국에서 '녹색모자'가 낮은 계급, 하층민을 뜻하는 색으로 일반인들이 터부시하는 데서 따왔다고 한다.
<녹색 모자 좀 벗겨줘>의 가장 큰 매력은 술술 편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미스터 후회남>만 해도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혼란스러워 책장이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반면에 이번 소설은 한 가족에게 펼쳐지는 3대의 가족사를 연차적으로 다루고, 이야기 전개도 빠르기 때문에 금방 책장이 넘어간다. 10부작 정도로 방송되는 드라마처럼 빠른 이야기 전개가 특징적이라, 45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왕창즈가 대학에 떨어지고, 시장대교 중간에서 떨어질 것을 고심하면서 시작된다. 교육 당국은 그가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에 먼저 지원하는 바람에 지역 대학에 입학을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커트라인을 20점 넘게 점수를 얻고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소설 마지막에서 가장 쓰라린 결론으로 연결된다.
고심 끝에 죽지 않고, 집에 돌아가자 아버지 왕화이는 탄원을 위해 교육국에 찾아가 항의를 시작한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결국 왕하이는 건물 가장자리에서 목숨걸고 항의를 하다가,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고향 집에 돌아온 왕하이는 자신의 힘든 삶이 자식에게 다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왕창즈를 현으로 보내면서 말한다. "자식이 출세만 할 수 있다면 부모가 겪는 고통은 다 훈장이다."
그런데 왕하이가 시위할 때, 재수할 돈을 주겠다는 교육국장의 말은 허언이었다. 죽기 살기로 학원을 들어보려 하지만 일하는 몸으로 수업을 감당할 수 없었다. 왕창즈는 서서히 현에서 일하는 농민공으로 적응해 간다. 더욱이 작업반장인 허구이의 장난에 속아 임금마저 떼이자, 결국 부동산회사 사장 린쟈보를 대신해 감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그 시간 고향 마을에는 이웃의 중매로 허샤오원이 민며느리로 들어와 창즈의 부모와 생활한다. 몇 번의 곡절이 지나고 둘은 현으로 나와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데, 아이까지 생긴다. 그때 왕창즈의 고향 친구인 마사지 샵 주인 장후이가 허샤오원에게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한다. 마사지 일은 성매매로 연결된다. 서서히 왕창즈도 그 현실을 알지만 성매매 한 번으로 자신의 월급 300위안을 버는 것을 알기에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한다.
아들 부부와 손자의 탄생이 걱정되는 왕하이 부부는 결국 현으로 나와서 구걸 생활을 한다. 거기에 왕창즈는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다. 다행히 회사는 그에게 위로금 2만 위안을 준다. 왕창즈로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친구 류젠핑의 제안으로 이미 힘을 잃은 남성 기능도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작전을 시작한다. 그런데 현에서 한 DNA 검사에서 아들 왕다즈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는다.
이제 수많은 고민들의 연속이다. 성으로 가서 다시 큰돈을 들여서 다시 검사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여의치 않자, 왕창즈는 자기 아들을 부유한 집에 입양 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나오고, 어렵사리 그 일을 시작한다.
중간까지만 들어도 우리는 왕하이, 왕창즈 부자의 지긋지긋한 가난에 동정이 간다. 그들에게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굴레로, 부자가 교육국이나 법원에 항의를 갈 때 들고 가는 작은 걸상만큼이나 처량하기도 한다.
결국 부자집에 보낸 3대인 왕다즈는 그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왕창즈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허삼관 매혈기에 나오는 지긋지긋한 빈민들의 삶이 기억난다. 또 옌롄커와 류전윈 소설에 등장하는 농민공들의 애환도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결과적으로 중국을 버티는 힘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중국 소설을 읽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페이소스와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 역시 왕하이와 왕창즈 부자가 삶을 견뎌내는 비장미를 느낄 수 있다.
위화의 추천사가 앞에 있는데, 그도 "해바라기 껍질을 밟았을 때 들었던 생기발랄한 소리를 떠올리며 작품의 어휘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찾아내고 싶었다. 생기발랄, 그래 생기발랄이 딱 어울린다"며 이 작품이 가진 특징을 짚어냈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역사랄 것은 없지만 중국의 도시화에 대한 도시민과 농민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중국인의 천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야만로 그런 가장 좋은 예다. 또 작가에 따라 각 지역별 사람들의 습관과 문화를 알 수 있는데, 이 설은 광시성의 낙후된 현(한국의 군 단위)의 문화를 잘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은 미국과 피 터지는 헤게모니 쟁탈전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끔씩 고민한다. 그런데 그 힘이 이렇게 가난에 쩔고, 권력에 짓밟히고, 억울한 민중에게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니체는 "역경을 걷는 것이 선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도가 아닐까 싶다.
녹색모자 좀 벗겨줘 - 농민공 왕창츠의 파란만장 운명 탈출기
둥시 (지은이), 이민숙, 이영구 (옮긴이),
달아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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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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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모자'를 쓴 한 가족의 삶에서 중국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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