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치와 미거지와 꼼치와 물메기 (국립수산과학원 자료 인용)
이무완
동해·삼척에서는 '곰치', 속초·고성에서는 '물곰'이라 하는 물고기가 있다. 둘 다 곰처럼 미련하게 생겼다고 하여 바닷가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곰치로 끓이면 '곰칫국'이고 물곰으로 끓이면 '물곰탕'이다. 이름을 얻은 물고기나 '곰'을 빌려준 곰은 어떤 마음이 들까. 물어볼 수 없지만 곰이든 곰치든 병아리 눈곱만큼도 반갑거나 기쁘지 않을 이름일 듯하다.
내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름이 '곰치'인데, 사전을 찾으면 전혀 다른 물고기가 나온다.
몸의 길이는 60cm 정도이며, 누런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의 불규칙한 가로띠가 있다. 뱀장어처럼 가늘고 길지만 살이 많으며 두껍고 비늘이 없다. 날카로운 이가 발달하였고 탐식성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뜻매김이다. 뱀장어처럼 가늘고 길며, 날카로운 이가 발달한 물고기라니, 바닷가 사람들이 '곰치'라고 하는 물고기가 아니다. 사실 곰치는 흔하게 보는 물고기가 아닌 데다 껍질이 두껍고 질겨서 가죽을 만든다면 모를까 사람이 먹으려고 일부러 잡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곰치는 미거지나 꼼치, 물메기 배에는 빨판이 없다.
짐작했겠지만 우리가 아는 곰치는 지역말이다. 동해·삼척에서는 곰치 라고 하지만, 그 밖에도 꼼치, 물곰, 물텀벙이, 미거지, 물메기, 물잠뱅이 따위 이름이 더 있다. 나름 물고기 안다니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해대니 더욱더 어지럽다.
곰치와 곰치 사촌들
지역에 따라 물메기, 물텀벙, 물고미, 물미거지라고도 한다. 민물 메기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살이 물렁하다고 '물메기', 살이 흐물거리고 곰처럼 둔하다고 '곰치', 물에 사는 곰이라고 '물곰(물고미)', 미거지하고 비슷한데 살은 반투명하고 더 물컹거려서 '물미거지'라고 한다. 이런저런 사전과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나온 자료를 살펴보고 곰치의 본명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결론부터 앞질러 말하면 곰칫국으로 끓여내는 바닷물고기는 '미거지'다. 미거지는 80~90㎝까지 자란다. 꼼치는 다 자라도 50㎝, 물메기는 30㎝쯤 된다. 예전 동해 바다에는 명태나 꽁치, 대구, 오징어, 도루묵이 넘쳐났다. 그러니 잘 팔리지도 않는 데다 살은 물커덩해서 잡으면 주르륵 흘러 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못생긴 것으로 치면 맨 앞자리를 다툴 만큼 인물도 없다. 더구나 큰놈이 1미터 가까이 되는 물고기니 무게도 만만찮아 그물을 망가뜨리는 골칫거리였다. 그딴 놈이 끌그물에 걸려 뱃전에 올라오면 어부 마음이 어땠겠나. 에이, 퉤퉤퉤 하고 바다에 미련 없이 텀벙 내던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텀벙이란 이름이 이래서 붙은 거다.
세상이 달라졌다. 대구, 명태, 오징어, 도루묵으로 넘쳐나던 동해 바다에 고기 씨가 마르면서 천대받던 미거지가 대접을 받는 세상이 왔다. 암미거지(붉은 곰치)는 밝은 보랏빛을 띠지만 수미거지는 거무튀튀해서 따로 '흑곰'이라고 한다. 살이 단단하고 알주머니가 없어 맛이 더 좋아서 같은 크기라도 흑곰(수미거지)가 조금 더 비싸게 팔린다. 암수 가리지 않고 몸이 흐물흐물한 까닭에 실제로 곰치를 본 사람이라면 먹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난다.
이 미거지를 주재료로 삼아 동해·삼척에서는 곰칫국을 끓인다. 묵은김치를 썰어 넣고 김칫국물로 간해서 칼칼하게 끓여낸다. 고기 맛은 흐물거리는 부위가 적은 수컷이 좋다고 하지만 사실 씹을 만한 게 없다. 끓이다 보면 살이 연하고 살갗이 젤리 같아서 가시와 속살이 절로 나누어져 그냥 들이마셔도 된다.
잎 진 겨울나무에 /뽀얗게 내린 무서리처럼/ 오래 끓이며 우려낸 솥 안에서/ 곰치는 가시와 속살이 제각기 나뉜다
이동순이 쓴 시 <곰칫국> 일부인데, 이 시에 나오는 곰치는 '미거지'인 셈이다. 무엇보다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다. 살이 연해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껍질과 살 사이 뜨끈하면서 물컹한 부분을 숟가락으로 떠서 후르릅 소리 내며 삼키면 배 속이 뜨끈해지면서 온몸이 환하게 풀리는 듯하다.
이 같은 목 넘김으로 곰칫국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이게 싫어서 고개를 잘래잘래 흔드는 사람도 있다. 속초·고성에서는 무와 대파, 마늘을 넣고 소름으로 간을 맞춘 맑은 탕으로 내는데 '물곰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