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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셨겠지만, 수산시장은 비명 없는 무덤입니다

[나의 비질 이야기] 물의 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다

등록 2021.03.25 08:55수정 2021.03.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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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질은 '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동물을 이해하고자 비질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질 활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기자말]
지난 22일은 물의 날이었다. 1992년 UN은 세계 물의 날을 제정했다. 인구와 경제활동의 증가로 수질이 오염되고 전 세계적으로 먹는 물이 부족해지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정한 것이다.
 
 수산시장은 상인과 방문객들로 붐볐다
수산시장은 상인과 방문객들로 붐볐다서울애니멀세이브
 
물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애니멀세이브 동물권 활동가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비질을 진행했다. 비질은 '진실의 증인 되기' 활동이다.


물의 날에 왜 수산시장에서 비질을 하냐고? 물은 인간이 마시기도 하지만 물이 서식지인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물고기, 해산물이라고 부르는 생명들이다.

수산시장의 비질은 도축장 앞에서의 비질과는 매우 달랐다. 닭과 돼지 그리고 소의 도축장은 철저히 가려 있다. 도심으로부터 먼 곳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도축장 문 앞까지 가더라도 도살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없도록 건물 안에 꽁꽁 숨어있다. 그 어떤 도축장도 도살 과정을 버젓이 보여주진 않는다.
 
 물살이의 몸통 반절만 잘라낸다. 신선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홍보 방법이다.
물살이의 몸통 반절만 잘라낸다. 신선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홍보 방법이다.서울애니멀세이브
 
하지만 수산시장은 다르다. 도살장을 드러낸다. 물살이에게 '도살'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생명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조 안의 물살이를 꺼내어 머리를 내려치고 칼로 아가미 부위를 내려친다. 한때 살아있었던 생명은 머리와 몸통으로 나뉘고 우리들은 그것을 '신선함'으로 받아들인다.

수산시장은 신선함을 과시한다. 투명한 수조 안에 물살이를 가득 넣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한다. 바구니에 담아놓은 물살이가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모습 역시 고통이 아니라 신선함으로 인식된다.

혹시 '물살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는가? 참 생소한 단어다. 동물권 활동을 하는 나조차도 한동안 이 단어가 익숙지 않아서 수중생물, 어류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물살이는 물고기의 대체어다. 물고기는 종차별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강아지를 보며 개고기라 부르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를 보며 고양이고기라 부르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매일 먹는 소와 돼지와 닭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라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수조 안에 있는 생명을 물고기라 부르는 걸까.


수조 뿐만 아니라 바다나 강에 사는 헤엄치는 생명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물고기'라 부른다. 태어나자마자 고기가 되는 운명일 뿐만 아니라 고기로 불리는 생명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물고기'라는 단어에는 생명성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은 무시되고 고기로 인식된다. 태어나면서 음식으로 대해지는 것이다.
 
 물에 사는 물살이, 숨 쉬며 살아가는 물살이
물에 사는 물살이, 숨 쉬며 살아가는 물살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엽서는 물살이 비질에 다녀온 후 노래를 만들었다.

"세상 모든 것에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듣지 못했네 듣지 않았네
소리 대신 온몸으로 내지르는 목소리는 듣지 못했네
물에 사는 물살이, 숨 쉬며 살아가는 물살이"



물살이는 비명이 없다. 비명이 없기에 도살장은 버젓이 드러낼 수 있었다. 물살이는 포유류나 가금류에 비해 도살될 때 흘리는 피가 비교적 적고 비명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물살이의 비명 없는 무덤
물살이의 비명 없는 무덤서울애니멀세이브
 
수산시장에는 갓 잡은 물살이를 회 떠먹을 생각에 들뜬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질에 참여한 우리는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다른 상인들의 호객행위에 응대해야 했다. "그냥 둘러보고 있어요." 돼지 비질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관련기사 : 삼겹살데이 앞두고 도축장 들어가는 돼지를 만나다]

돼지 비질에서는 자동차 소음을 비집고 끊임없이 들리는 돼지의 비명소리에 마음이 괴로웠지만 물살이 비질에서는 상인들의 호객행위와 방문객들의 수다소리에 둘러싸여 얼이 빠진 채로 비질을 진행했다. 수산시장은 '비명 없는 무덤'이었다.

물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 동물권 활동가 중 일부는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과 연대하고 있다. 동물권 활동가들은 수산시장의 상인들을 비난하거나 반대편에 서 있지 않다. 동물과의 연결은 또 다른 인간 동물과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 비질(vigil)은 Animal Save Movement 단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활동입니다. 비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비질은 서울애니멀세이브(Seoul Animal Save)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애니멀세이브의 임무는 모든 도살장을 지켜보며 모든 착취당하는 동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서울애니멀세이브 계정(https://www.facebook.com/seoulanimalsave)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발행하였습니다.
#물의날 #물살이비질 #비질 #서울애니멀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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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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