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유공자 엄익근 선생 손주 엄창휘씨. 보훈처의 미진한 처사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김종훈
엄씨는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았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엄윤희씨와 할머니 윤을남 여사를 통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는 엄씨가 중국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도 이어졌다. 엄씨의 형인 근학과 운학이 고국을 향해 떠나고자 마음먹자 본인 역시 모든 기반을 접고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엄씨가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독립유공자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많이들 한국에 왜 왔냐고 묻는데, 고향이니까 당연히 돌아오는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엄씨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지냈는데 1991년 한중 수교가 되자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2000년대 들어 때마침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특별귀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실행에 옮겼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특별귀화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할아버지의 기록은 국가보훈처에 명징하게 남았지만, 자신과 할아버지가 혈연관계라는 증명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엄씨 형제에게 '아버지 엄윤희씨가 엄익근 지사의 아들이란 것을 증명하고, 본인들이 후손인 것을 입증하라'라고 요구했다. 결국 엄씨보다 수년 먼저 한국에 들어와 일용직으로 전전하던 엄씨의 큰형 근학씨가 불법체류자 신분 상태에서 이를 증명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엄씨 형제가 부친 엄윤희씨가 서울 거주 시 매동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을 기억해냈다는 점이다. 2005년 3월 엄씨 형제는 서울 매동초등학교 25회 졸업생(1933년) 가운데 엄씨 부친과 한자까지 이름이 같은 '엄윤희'(嚴允熙)를 찾아냈다. 또 1939년 11월 17일에 찍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환송식 사진에 조부 엄익근 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엄익근 지사의 모습은 부친의 모습과 꼭 닮았다. 결정적으로 부친 엄윤희씨가 고향마을의 공산당위원회에서 "우리 부친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라고 말한 자료가 발견됐다. 결국 보훈처는 2007년 5월 이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임을 심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엄창휘씨는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국에서 귀화한 독립유공자 후손이 성씨나 본을 인정받지 못하는 건 100% 보훈처의 잘못"이라면서 "법안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사법부로 책임을 떠넘기는 건 책임을 방조하는 행위다. 나를 포함해 형제들이 이 문제로 정부와 다투는 건, 처음부터 국가보훈처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다.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탓에 말도 잘 못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법안에 특별조항을 추가하든지 관련법을 새로이 만들든지 보훈처 역할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2006년 11월 귀화한 엄씨는 당초 익숙하지 않은 법률용어와 한국생활 적응 등을 이유로 호적 관련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께 자신과 형제들의 제적등본에 본과 성씨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최근 엄씨는 가족들과 함께 본관을 되찾기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편 광복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현재 법률상 가족관계 등록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돼 있다. 이로 인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본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부분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먼저 개선해할 지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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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의 분노 "내 본관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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