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s.envato
지난주, 나는 뿌리염색 하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가 웃픈 현실을 보았다. 대도시의 큰 헤어숍에는 보조 미용사가 와서 가운도 갈아 입혀주고 머리하는 동안 발 마사지 기계도 대 준다는데, 우리 동네 미용실은 열 평도 안 되는 소규모에 50대 여자 원장님 한 분이 하다 보니 그런 기계 없어도 발 디딜 틈 없고 웬만한 건 다 셀프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드라마 결사곡(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 재방되고 있었다. 얼마 전,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일명 막장계의 대모 임성한 작가님이 쓰신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세 쌍의 부부가 나오는데, 남편 세 명 모두 바람 피우는 내용이다. 내 옆에서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드라마를 보던 50대 중년의 여인 둘의 대화.
손님1 : "남자들은 지들은 늙었으면서 하나같이 젊고 이쁜 것들하고 바람피워."
손님2 : "보기 좋구만 왜? 그럼 늙은 것하고 바람 피우면 좋겠어? 나는 누가 좋다는 사람도 없지만, 있어도 못 만나."
손님1 : "왜 못 만나. 난 이러고 산 게 억울해 죽겠구만."
손님2 : "옷 입어도 부끄러운 몸뚱아리, 옷 벗고 누구한테 보여줘? 다 늘어져서 누가 볼까 무섭다."
손님1 : "불 끄면 보이냐?"
손님2 : "다 보여."
원장님 : "암막 커튼이 왜 있는데!"
나는 그만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신스틸러(scene stealer) 원장님! 여기서 암막 커튼이 왜 나와! 현실이 이러할지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이번 생의 남은 소확행인 것이다.
석양을 등지고 노부부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가슴 찡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모습이라 내막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니 마냥 감동일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서로 배우자와는 세 마디 이상 섞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져서 티브이만 보거나 각자 휴대폰만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찌 그리 남의 남자(여자)는 그리 말이 잘 통하고, 내 남자(여자)는 그리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 그 남자도, 그 여자도 다들 집에서는 불통의 아이콘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남자로, 한 여자로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채 아이 키우고, 집 대출금 갚느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이제 청춘이 끝났다는 느낌, 내게 다시는 사랑이 오지 않을 거라는 절망이 서성이는 마음을 만든다. 그런데, 이러고 사느라 억울한 손님1도, 드라마 속 불륜의 주인공들도 이래서, 혹은 저래서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져야 할 무게가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선택과 감당의 문제인데.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한 번의 선택 안으로 날 구겨 넣어야 하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다. 하물며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인데 말이다. 제도적으로 청년, 중년, 노년 단계마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암막 커튼은 공부하는 아들, 늦잠 자라고 설치했는데 이런 다양한 용도가 있었다니. 세상 참, 배울 게 많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공유하기
'뿌염' 하러 간 동네 미용실에서 커피 뿜은 이야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