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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신고 전국 50위, "내가 매일 딸을 잃어버린 이유는..."

발달장애인 엄마 한혜승·김혜정씨가 말하는 일상화 된 중증장애인 실종... "전담 체계 필요"

등록 2021.04.05 18:09수정 2021.04.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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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연지가...' 

복지관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누군가 딸의 이름을 말하면, 엄마는 심장이 뛴다. 대부분 딸의 실종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월 말이던가 1월 초던가.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인 한혜승(55)씨는 영하 10도의 날씨는 또렷히 기억한다. 딸이 외투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상태로 실종됐기 때문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김연지(26)씨는 지금도 많으면 하루에 2번도 사라졌다. 집에 잠금장치 5개를 해놔도 딸은 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짧게는 1~2시간에서 4~5시간 만에 이웃주민의 연락으로 딸을 찾은 게 수백 수천 번이다. 언젠가 경찰은 한씨의 실종신고가 전국 50위 안에 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찰 수색이 12시간이 넘었는데도 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이제 모텔을 수색해봐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경찰은 발달장애 여성들이 종종 납치·성매매로 발견돼 한 이야기였겠지만,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쓰러졌다. 다행히 낮 12시 전에 실종된 딸은 다음 날 새벽 4시 경 찾을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근처에서 사라진 딸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 근처에서 발견됐다. 

"스물 여섯 우리 아이, 몸만 성인"
 
 한혜승씨는 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발달장애인의 실종·사망은 우리가 내내 겪는일이라 들을 때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혜승씨는 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발달장애인의 실종·사망은 우리가 내내 겪는일이라 들을 때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나리
 
"발달장애인 자식을 키우는 부모 중에 아이의 실종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다고 봐요. 80%이상은 다들 한번씩 겪어본 일이라고 봐요."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한혜승씨는 "얼마 전, 실종된 발달장애인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의 실종·사망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겪는 일이라 들을 때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월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간 접수된 발달장애인 실종 신고는 4만 2619건으로 연평균 8524건에 달한다. 물론 실종이 모두 사망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장애인 실종 발생은 8360건으로, 이중 8285건은 집으로 돌아왔다. 75건 정도는 끝내 찾지 못한 건수다. 최근 5년간 미발견 상태는 104명, 사망건수는 271명이며 지난해(2020년), 미발견된 실종 장애인은 65명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실종건수, 미발견 건수를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장애인 실종보다 실종된 발달장애인이 발견되지 못하는 비율이 2배, 사망한 채 발견되는 비율은 4.5배 높다. 

그렇다면 왜 발달장애인의 경우 실종은 잦고, 발견이 어려울까. 한씨는 발달장애인의 특징으로 이를 설명했다. 


"비장애인들은 우리 아이들(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잘 모르잖아요.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처럼 어려보이면, 주위에서 신고하기라도 하는데. 다 큰 성인이 혼자 다니면, 실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겉모습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거든요. 대화해보지 않으면, 이 아이의 상태를 알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보호자 없이 헤맨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줄 아는 거죠."

'도전적 행동(돌발행동)'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경우 일반적인 범주 밖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잦다. 보호자가 함께 있는데도 보호자가 모르는 사이 집이나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식이다. 

한씨 곁에서 비슷한 또래의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김혜정(54)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26살 중증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김씨는 "아이가 사라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라면서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모르고 부모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식의 지적을 하는 건 부모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사회적거리두기와 방역으로 장애인교육기관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한씨는 "매일 복지관에 갔다 오는 등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야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는데, 코로나 이후 아이의 일상이 무너졌다"면서 "매일 집에만 있으니 답답함이 커져 집 밖으로 뛰쳐 나가는 일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실종 후 빠른 대처 필요... 시스템 뒷받침돼야"
 
 
 발달장애인 엄마 한혜승·김혜정씨는 "실종 신고 순간, 전담체계 꾸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엄마 한혜승·김혜정씨는 "실종 신고 순간, 전담체계 꾸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신나리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실종'의 원인을 따지기보다 '실종 후' 대처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지난해 지인의 발달장애 아이가 실종됐다. 그런데 닷새동안이나 전담반이 구성되지 않았다. 아이는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됐다"면서 "실종 아동은 2시간만에 전담반이 구성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쉽게 찾았다. 경찰의 전담반 구성 등 초동대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씨는 경찰의 초동대처로 '앰버경고(AMBER Alert)'를 언급했다. 앰버 경보는 실종아동이 발생하면 고속도로와 국도, 지하철 등의 전광판과 교통방송, 휴대전화 등을 활용해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해 실종아동의 조기 발견을 유도하는 체계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부터 실종 또는 유괴된 아동의 공개수사를 시작할 때 앰버 경고 시스템을 활용했지만,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앰버 경고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연지(딸)의 실종신고를 한 게 지금까지 1000번은 넘을 거예요. 어렸을 때는 매일 아이를 잃어버렸으니까요. 성인이 된 후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한 달에 1~2번은 사라져요. 그런데 앰버경고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딱 한 번이었어요. 복지관이 보호하고 있다가 아이가 사라졌을 때, 복지관 이사장이 경찰에 전화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앰버경고가 뜨더라고요."

한씨는 "한 번은 경찰에 앰버 경고를 요청하니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전담체계'도 발달장애부모들의 요구 중 하나다. 현재 발달장애인 실종 대응 시스템은 '실종 아동' 대응 시스템에 포함돼 운영된다. 현행 실종아동법을 보면 실종 아동 업무는 아동권리보장원이 실종 치매노인 업무는 중앙치매센터가 수행한다. 하지만 발달장애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의 특징에 맞춰 운영될 실종 전담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역시 발달장애인 실종에 큰 예산을 쓰지 않는다. 서울 성동구와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마련해 발달장애인에게 GPS가 내장된 신발 깔창 등을 보급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가족이 '알아서' 실종을 예방해야 한다.

김혜정씨는 "아직도 우리아이에게 하루에 수십번, 같은 길을 설명하고 대중교통 타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도 언제든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산다"면서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아는 전문가, 부모, 경찰로 구성된 전담체계가 있어야 우리 아이를 잃어버렸어도 죽지 않은 상태로 찾을 수 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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