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을 돌파했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월 서울의 주택 종합 평균 매매가격은 8억975만원으로, 전월(7억9천741만원)보다 1천234만원 오르며 처음 8억원을 넘겼다. 사진은 3월 2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한 번도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아본 적 없는 나의 첫 독립은 서울시 강남구에서 시작됐다. 이유는 딱 하나. 나의 큰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형제 중 가장 부유한 큰아빠 집에서 나는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강남. 하루에 버스가 7번 오는 신광리에서 살던 여자아이는 강남이라는 동네가 주는 위화감에 잔뜩 쫄았다.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촌스러움을 들킬까 자꾸만 움츠려 걸었다. 구부정하게 걷는 나에게 큰아빠는 "영지야, 어깨를 쫙 펴고 걸어야지 구부정하게 걸으면 안 돼" 하며 슬쩍슬쩍 용돈을 쥐어 주시곤 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큰집을 떠났다. 친구와 25만 원씩 나눠내던 서교동 2층 원룸부터 그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온 신길동 반지하 집, 장마에 물이 반쯤 잠겨 다시 옮겨야 했던 신월동 옥탑까지. 참 많은 시간들을 어깨를 쫙 펴지 못한 채 걸었다.
지방대에 변변한 뒷배경도 없이 꿈 하나만 믿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 나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혼나는 기분으로 20대를 보냈다. 왜 그랬을까? 자신감을 가지기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초라하다고 느낀 탓이겠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할 노릇이었다. 한평생 한 곳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만 봐온 내겐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또 다른 지역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서울 사람이 부러워 아등바등 서울로 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강남, 강남 지역 사람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아파트,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 아파트의 로열층을 동경하더라는 식의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막내 작가 시절에 한 친구가 어느 날 내 귓속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
"저쪽 팀 막내 있잖아. 강남 OO아파트 산대. 대박이지?"
난 뭐가 대박인지 몰라 "거기가 어딘데?"라고 답했다. 그 친구는 바람 빠진 풍선의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 사는 곳을 세분화해서 평가하는 것은 내게 제법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지역에서 다른 동네란, 그저 앞, 뒤, 옆 동네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는 곳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고 싶은 곳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살 곳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내가 가진 돈에서 맘에 드는 동네를 고르면 되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우와' 하는 곳에 살고 싶었으나 나는 돈이 별로 없었으므로 싸고, 가성비 좋은 동네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흐르듯, 밀리듯, 쫓기듯, 동네에서 동네로 옮겼다. 문득 신광리 사람들은 어떻게 한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누구의 채점도 바라지 않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