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문자
김겨울
저는 이 방송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디에나 있고, 특히 '당신' 곁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은 알지 못하고 못 봤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라고요. 저는 이 방송에서 트랜스젠더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임을 얘기하고, 또 어떤 어려움들에 처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방송 이후 가장 먼저 반응해준 것은 주변 지인들입니다. 트랜스젠더가 처한 어려움과 각종 문제를 대중적 시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잘 알린 것 같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방송 출연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방송을 보고 남기신 문자가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방송을 보시고 제게 "사랑하는 내딸~~~ 어제 티비 잘봤다 오늘도 녹화한 거 또 보구... 엄마가 가슴이 넘 아프다 우리딸 마니 힘들었을 텐데... 힘내거라.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미안하다 나나 너나 누구 잘못이 아닌 데도 말이다 태어나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라는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방송 이후 예상한 것보다 좋은 반응이 많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변희수 하사님께서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릴 수 있는 방송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가 얼마나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가 힘든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반응들이 있던 한 편, 여전히 트랜스젠더의 삶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비난 섞인 댓글이나 '인권을 강요한다'는 이야기들엔 가슴이 아파 밤새 잠 못 이루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오해에는 착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부디 다시 한 번 방송을 천천히 시청해 보셨으면 합니다. 본인의 시선으로 재단하여 맞다, 아니다의 문제로 판단할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에게 포용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과제로서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최근 점점 심각해지는 트랜스젠더 혐오를 보며 오히려 인권이 예전보다도 후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리수님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에 트랜스젠더라는 존재가 알려진 이후 현재 우리 사회에선 트랜스젠더 타자화와 함께 존재 자체에 대한 반대가 심해졌고 단편적 이미지에 가려져 현실의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어려움은 묻혔습니다.
인식이 더 나아졌다면 숙명여대에 입학하려다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한 A님이나 변희수 하사님이 사망하는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법원에서도 종종 성기수술 요구 없이 진행됐던 성별 정정의 건들이 전부 기각당하기 시작하며 오히려 더 후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인권 백래시'가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후약방문도 못 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안타까운 생명이 바스러져야 비로소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슬프게도 정작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때그때 생기는 누군가의 관심이나 도움만으론 나아질 수 없습니다. 법과 제도로서 개선하고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론을 주도해 나가야만 합니다.
트랜스젠더는 당신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