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서울시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2021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군소정당 및 무소속 후보자들이 방송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본소득당 신지혜, 국가혁명당 허경영, 신자유민주연합 배영규, 진보당 송명숙, 무소속 정동희, 무소속 신지예, 무소속 이도엽, 미래당 오태양,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
국회사진취재단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울시장 후보에는 12명의 후보가, 부산시장 후보에는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서울시장 후보 중에서는 5명의 후보(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 미래당 오태양 후보,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 진보당 송명숙 후보, 무소속 신지예 후보)가 성평등/페미니즘을 핵심 기조이자 공약으로 제시했고, 이 중에서 4명의 후보(신지혜, 오태양, 송명숙, 신지예)는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의제로 제시했다.
거대양당과 후보들이 혐오를 양산하는 세력의 눈치를 보며, '사회적 합의'를 빌미 삼아 계속 외면해왔던 의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후보들이 과거보다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선거운동 기간에도 유권자에게 제대로 가 닿을 수 없었다.
모든 후보들이 동등하게 5000만 원의 기탁금을 냈지만 거대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로 인해 소수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방송토론의 기회조차도 동등하게 보장받지 못했다. 소수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거대양당 후보들과 분리되어 방송토론을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의 방송토론 기회만이 주어졌다.
반면, 거대양당 후보들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하는 두 번의 토론회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주최하는 토론회, 그리고 소속 의원들이 대신 나서서 토론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보장받았다. 거대양당이 아닌 다른 정치를 상상할 수 있는 권리를 소수정당과 무소속 후보들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보장받지 못했다.
전체의 1.91%... 20대 여성의 15.1%
재보궐 선거의 결과만 놓고 보면, 희망을 찾기는 다소 어렵다. 성평등을 외쳤던 5명의 후보들이 받은 표를 모두 더하면 전체 득표수의 1.91%이며, 성소수자 권리를 주장한 4명의 후보가 받은 표는 1.23%이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와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이지만 그때 정의당(김종민), 민중당(김진숙), 녹색당(신지예), 우리미래(우인철) 후보들이 받은 표의 합계가 3.98%였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던 정의당이 받았던 득표율(1.64%)을 빼더라도 낮은 수치이다.
이러한 결과의 근본적 원인은 거대양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한국정치의 구조와 제도에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를 외쳤던 후보들 중에 득표율 1%를 넘긴 후보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소수정당과 무소속 후보들 또한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남성 중심의 성별화된 권력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지만, 성평등 민주주의가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 선거결과는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정치가 확장성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페미니스트 후보들의 낮은 득표율은 아쉽지만 그것이 페미니스트 정치와 성평등 민주주의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18-19세를 포함한) 20대 여성 중 15.1%가 거대양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투표를 했다. 이는 다른 어떤 세대와 성별보다 20대 여성이 거대양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망하고 그들을 지지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다른 정치에서 성평등과 페미니즘은 핵심 기조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이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페미니스트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와 선택으로 전환되고 더 확장될 수 있도록 그동안 수행해왔던 페미니스트 정치의 방식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새로운 전략의 모색이 필요하다. 다시 신발 끈을 묶기 위해서라도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