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 봄바람에 꽃잎 '우수수'... 봄날은 간다

꽃잎 진다 서러워 말아요, 낙화의 계절에 읽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등록 2021.04.13 08:04수정 2021.04.1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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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임영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의 <낙화> 전문. (시집 <적막강산> 1963)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되면 야박한 현실과는 다르게 세상은 LED 전등을 켜 놓은 듯 잠시 잠깐 동안 환해집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화개천지홍(花開天地紅)'이라 했습니다. 꽃들이 피어나니 하늘도 붉고 땅도 붉다는 말입니다.
  

꽃은 피면 지게끔 되어 있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꽃이 떨어진다고 서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 임영열

 
질서 속에서 운행하는 모든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꽃이 피어나는 '절정의 순간'은 지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생사를 우주의 시간으로 비교해 본다면, 우리 한평생이 불과 0.3초에 지나지 않는다 합니다. 눈 깜짝할 새입니다. 인간의 한평생이 이럴진대 하물며 '꽃의 순간'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없다 했습니다. 짧아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꽃이 지고 난 빈자리에 '고요한 아름다움'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임영열

 
꽃은 피면 지게끔 되어 있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꽃잎 떨어진다 서러워 마세요. 봄비와 봄바람 탓이 아닙니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가고 있다고 탄식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축복에 쌓인 낙화는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을 향해 '꽃답게 죽는 청춘'이므로.
#낙화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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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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