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코인
고정미
우선 모든 투기, 모든 거품은 경제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연히 부동산 거품이나 주식 거품이나 모두 문제다. 그런데 이들 자산은 실체라도 있다. 그리고 각종 금융사기를 막을 시장거래의 규칙, 법과 제도도 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파생상품도 비록 규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엉성했고 그 투기적 위험도가 극에 달해서 워런 버핏이 '대량살상무기'라고 비난했지만, 그래도 기초자산이라고 하는 것이 있기는 했다. 파생상품의 원천을 찾아 올라가면 부동산 채권이나 주식 같은 기초자산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상코인은 그 가치를 뒷받침하는 기초자산 자체가 없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역할을 하는 '쓸모'라고 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손실위험을 감당해주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제도적인 시장거래 규칙이 없으니 온갖 편법과 사기가 난무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이 정도면 그냥 '순도 100% 도박판'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코인 투기가 십수 년 전의 파생상품 투기보다도 더 위험하고 더 한심한 투기행위라고 믿는다.
그런데 거금이 오고가는 투전판은 사회적으로 미칠 막대한 해악을 고려하여 통제하는 정부가 웬만한 도박판과 비교도 안 되는 수십조 원이 오가는 가상코인 도박은 규제하지 않고 있다. 테슬라, 골드만삭스, 페이팔, 마스터카드 등 유명한 기업들이 자산의 하나로 인정하는데 설마 그렇게 허무맹랑한 거짓 자산일 리가 없다고 확신해서인가?
하지만 일부 명성을 얻은 장사꾼들의 우호적인 발언이 코인 투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과거 파생상품은 워런 버핏 등 일부 선구자들을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식자가 위험성 경고는커녕 그 훌륭함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일찍이 1970년대 피셔블랙과 마이런 숄즈의 옵션가격모형이라는 '탁월한' 모델을 토대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유명 경제학자들과 온갖 쟁쟁한 금융공학자들이 완벽하게 위험분산을 시켜 설계한 상품이 파생상품이라고 했었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등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들까지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그럼에도 세계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주범의 신세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가상코인을 보라. 한국은행장과 금융위원장은 물론, 미국의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이나 옐런 재무장관 등 압도적으로 많은 전세계 금융당국자들이 모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누리엘 루비니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도 모두 가상코인 투기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거품 붕괴 이후를 대비해야
그래도 아직 남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토록 뻔한 기술에 이토록 뻔한 거품이라고 진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비트코인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열광시켜오고 있냐고? 행동경제학과 심리경제학에 정통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최근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한 가지 단서를 알려준다.
그는 비트코인에서 연출되는 '서사(narrative)'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에 대한 일종의 탈출구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내러티브에 따르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그동안 거대 금융기업들로부터 사기당하고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해온 시민들의 내면에 "정부의 통제와 관리,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하는 잠재적 열망의 불을 댕겼다는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시대에 "비트코인은 국적이 없어 더욱 민주적이고 국제적인 호소력을 지녔는데, 비트코인 지갑의 소유는 세계 시민이 된다는 것이며, 어찌보면 전통적인 소속집단에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해방감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불안정 노동환경에 좌절한 2030세대에게 첨단으로 포장된 자산거품 시장에 뛰어들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까지 불어넣어 주었으니 오죽하겠나? 특히 비트코인을 만들었던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까지 베일에 쌓여 추리물적 요소까지 가미됐으니 흥미와 관심을 끌 만한 모든 요소가 갖춰진 셈이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미래적 상상력' 요소들을 모두 동원해서 청년세대를 투기시장에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전형적 기성세대인 이광재 의원은 "청년들의 미래투자를 기성세대가 막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 허구적 내러티브에 순진하게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실제로 가상코인 투기 참여자 중에는 2030세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코인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2021년 1월 말 기준으로 투자자 중 20대가 32.9%, 30대가 29.1%로 나타났다. 대체로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서, 만약 암호화 화폐 투기거품이 꺼지면 2030세대들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거품 붕괴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간명한 해답은 '일말의 튤립 꽃향기' 조차의 가치도 없는 가상코인의 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했다는 정치인이라면, 우리 사회가 위험천만한 도박을 통해서만 미래를 설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마땅히 노동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사회보장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노동으로 일하는 것 이상의 비율로 '집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길은 없다. 현실이 힘들다고 마약에 취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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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조 오가는 '가상코인 도박판' 금지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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