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의 재판정 모습 사이코총독을 암살하려 한 강우규(상)와 동지들의 재판 모습(하)과 강우규의 아들(중). 출처 매일신보(1920.02.15.)
이병길
강우규는 1심 재판에서 뉘우침의 기색이 없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마지막 1920년 5월 27일 고등법원 상고가 기각되면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강우규는 기독교인이었다. 상고 기각을 한 재판장은 와타나베였다.
강우규의 상고 이유는 "총독을 살해하고자 폭탄을 던졌을 뿐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자 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조선 민족의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하여 총독에게 폭탄을 투탄한 자기주장은 정당하므로 자기 행위도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의 상고 기각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총독을 살해하고자 폭탄을 던진 것은 주변의 사람에 대해서도 살해의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상(死傷)케 한 이상 그 결과에 대하여 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사형에 처함은 부당하지 않다. 총독은 죽지 않고 살았는데 사형에 처함은 부당하다고 하지만, 총독 생존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신체를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폭발물을 사용하여 살인(殺人) 기수(旣遂, 실현) 미수(未遂-미실현)의 이유가 있는 이상 사형에 처함은 부당하지 않다. 따라서 원판결에 의해 사형에 처하고 상고의 이유는 없다."
와타나베는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최고법원의 수장으로서 식민지 경영의 최전선에 자리하면서도 제국주의적 편견에 함몰되지 아니하고 양심적인 판단과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고와 행위가 성서의 가르침이 바탕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학자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는 일본에 적대적인 독립투사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였다. "일본이 정권을 넘어서 모든 민족을 포용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와타나베는 일제의 식민지 경영에 복무한 판사였다.
박재혁,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다
1921년 3월 14일에 와타나베 도오루(渡邊暢, 1858년생) 재판장, 이시카와 다다시(石川正), 오가와 테이(小川悌), 미즈노 마사노죠(水野正之丞), 마스나가 쇼이치(增永正一) 5명의 배석 판사와 조선총독부 구사바 린고로(草場林五郞) 검사가 나란히 앉았다.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대략 1시간 동안을 심리하였다. 모토키 변호사가 약 30분 동안 복심법원의 공소한 판결을 파기하여 달라는 변론이 있고 이에 대하여 초장 검사의 변박이 있었다. 박재혁 재판의 증거물은 오택의 집에서 보관한 후 손수건으로 감싼 폭탄의 잔해, 경찰서 파손 현장, 그리고 서장의 부상 치료 사실 있다. 그리고 박재혁의 경찰, 검찰, 재판과정의 진술뿐이었다.
1921년 3월 31일 오전 9시 반에 박재혁의 마지막 재판이 열렸다. 경성고등법원은 변호사 모토키 후사키치(本木)의 변론과 검사의 의견을 들었다.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졌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박재혁을 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토키 변호사가 상고한 이유는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법률 적용의 문제가 있다. 둘째는 폭탄 투척 행위가 투척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셋째 청사 파괴와 서장 살해 의도와 지방민심 동요라는 두 가지 목적의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 넷째 폭탄은 투척했지만, 위험성이 많은 것은 아니었고 살해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
와타나베 재판장은 상고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1심과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직접 판결하였다. 첫 번째 법률 적용 부분 문제이다. "제1은 건조물 침입은 형법, 제2는 폭발물 수입 및 소지는 폭발물단속법, 제3은 치안 방해 및 타인의 신체・재산 손상 폭발물 사용은 폭발물 단속규칙, 살인미수와 관청 청사 손괴는 형법에 적용된다. 살인미수와 청사손괴는 하나의 행위이지만 무겁게 살인미수죄로 정하는 형벌에 따라 처단하여야 한다. 제1과 제3, 제2와 제3의 각 행위는 모두 수단과 결과의 관계이므로 가장 무거운 제3의 죄를 정하는 형 가운데 사형을 선택하여 피고를 위와 같은 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판결하였다. 변호사는 원판결은 건조물침입과 폭발물 사용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으며, 또 제2 행위와 제3 행위에 수단 결과 관계가 있다고 형법을 적용하여 처단한 원판결은 의율(擬律, 법규에 따라 징벌을 결정하는 일)을 잘못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와타나베는 일부 기록의 오기(誤記)가 있음을 확인하고, "대개 치안을 방해하고 타인의 신체 재산을 손상할 목적으로 폭발물을 수입 소지하고 그다음 이것을 사용한 경우에는 그 수입 소지 행위는 그것을 사용 행위 관념 속에 포함되므로 단순하게 한 개의 폭발물 사용죄로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제1심이 폭발물 수입 및 소지 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에 대하여 법률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제1심 판결 취소 이유 중에 이것을 헤아려 보면 의율착오(擬律錯誤)의 불법(不法)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원판결은 이 점에 있어서 파기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상고의 2번째 이유는, 폭탄 투척과 청사 손괴 및 서장살해 의도의 인과관계이다. 변호사는 박재혁에게 폭탄 투척으로 서장살해와 청사 손괴의 결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폭탄을 던지면 해당 청사를 파괴하고 또한 서장을 살해할 수 있음을 예상하여 폭탄 투척했다는 판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원판결은 이 점에 있어서 채증(採証) 방법에 위법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와타나베 재판장은 심문조서 및 부산경찰서 손괴 흔적, 하시모토의 상흔 기록, 박재혁 공판 과정의 진술을 종합하면 청사손괴 및 서장살해 의사 등의 증거가 있다고 보았다. 와타나베는 "부산경찰서 사무실 부근에 폭탄을 던지면 해당 청사를 파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장을 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원심이 위의 각 증거에 의거하여 다시 사실을 인정한다면 하등 채증(採証)법칙에 위반한 불법은 없다. 논지 이유 없음"이라고 하였다.
상고의 3번째 이유는, 박재혁의 투탄 목적이 지방 민심 동요와 서장살해 두 목적이 양립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토키 변호사가 볼 때, 박재혁의 의거는 지방민심의 동요를 일으키겠다는 진술이 사법경찰 진술조서에 없고 재판정에서 인정한 것이나 진술의 취지가 다르다. 박재혁의 진술의 "하나는 그 목적이 폭탄을 경찰서 내에 투척하고 지방 민심을 동요시키는 데 있지 살인 및 청사 파손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고, 하나는 그 목적이 살인 및 청사 파손에 있었다고 한다. 이 양자는 서로 납득을 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진다. 저것을 채용하면 이것을 이용할 수 없고, 이것을 이용하면 저것을 취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양립을 허용하지 않고 개개의 공술을 합쳐 채용하여 피고에게 지방민심의 동요를 일으키게 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한 원판결은 이 점에 있어서 채증(採証) 법칙에 반하는 위법이다"라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폭탄을 투척하고 지방 민심을 동요시킬 목적이라는 공술 부분은 죄증(罪證)으로 제공되었다. 살인 및 청사 손괴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는 공술 부분은 죄증으로 제공되지 않았다"라고 인정하였다. 하지만 박재혁의 투탄에 따른 청사 파손과 서장살해 가능성, 지방 민심 동요 목적을 가졌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므로 "원심이 위 증거 등을 살피지 않고 위 사실을 인정한 것은 상당(相當, 적당)하므로 원판결에는 소론과 같은 위법이 없다. 본론 취지도 이유 없다"라고 판결하였다.
상고의 4번째 이유는, 폭탄의 위력은 원래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서장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완전히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원심판결은 하시모토 슈헤이에게 하등 생명 위험을 초래하는 이유가 있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단순히 3척 떨어진 곳에서 폭탄을 던졌다는 사유만으로 피고인에게 살인미수 사실을 인정하고 형법 제199조 제230조를 적용한 것은 이유불비(理由不備) 또는 의률착오(擬律錯誤) 위법(違法)이라고 변호사는 주장하였다.
와타나베는 폭탄을 던지면 3척 정도 떨어진 사람의 신체나 생명을 해할 위험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보았다. 박재혁의 행위가 "원심에서 '살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판시하여 피고인에게 살인미수 사실을 인정하여 이것을 형법 제199조 제203조에 문의(問擬)한 것은 당연하고 추호도 이유불비 또는 의율착오의 위법은 있지 않다. 본론 취지 또한 이유 없다"라고 하였다.
상소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고 난 뒤에 와타나베 재판장을 최종 판결을 다음과 같은 요지로 하였다.
"위 이유로 형사소송법에 의거하여 원판결을 파기하고 본원에서 직접 판결하기로 한다. 따라서 원판결이 인정한 사실을 법률에 조회하여 건조물 침입, 폭발물 사용은 폭발물 단속벌칙, 살인미수 행위는 형법, 청사손괴행위는 형법에 적용한다. 폭발물 사용, 살인미수, 청사손괴 이 세 가지 죄명을 비교 조회하여 폭발물 사용에 관한 죄를 무겁게 하여 이에 따라 건조물 침입과 폭발물 사용과의 사이에는 수단 결과 관계이므로 형법 제 54조 제1항 후단(後段)의 제10조에 따라 엄하게 폭발물 사용에 관한 형을 적용한다. 제1심 판결은 형법 시행법 제22조를 적용한 부당함이 있을 뿐 아니라 과형(科刑, 형벌부과)에 경솔함이 지나치므로 이것을 취소한다. 원판결을 파기하고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압수물건 중 증거 제1호인 폭탄 파편은 몰수하고 그 나머지는 각각 제출인에게 되돌려준다."
1921년 3월 31일 서울(경성)의 고등법원 형사부 와타나베(渡邊) 재판장은 건조물 침입, 폭발물 사용. 살인미수 행위, 청사 손괴행위 중에서 '폭발물 사용에 관한 형에 따라 사형을 선택하여 처단' 판결을 하여 박재혁의 사형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