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 5일,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동료와 함께 어린이 인권에 관련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분필로 초등학교 담벼락과 놀이터 바닥 등에 문구를 적은 장면을 기록한 사진
여름
나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간혹 학교에서 나를 처음 보는 동료 교사는 나에게 반말로 인사한다. 키가 작은 편이고, 화장을 하지 않고, 편하게 티와 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를 아마도 6학년 학생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학생과 교사의 모습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나는 종종 청소년으로, 심지어 초등학생으로 '패싱' 되곤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반말을 듣는다.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수업 준비물을 챙기러 준비실에 갔는데, 준비실을 관리하는 교사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반말로 신경질을 냈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챙겨야 해서 '저 교생인데요'라고 정체를 밝혔더니, 교사가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어려 보이셔서 학생인 줄 알았어요. 너무 죄송해요.'
그런데 교사의 사과는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학생이면 무작정 반말로 화를 내도 괜찮고, 교사이면 존댓말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건가? 상대가 학생이면 미안하지 않았을 일이 교사이면 미안해지는 건가? 교사는 왜 다짜고짜 반말로 신경질을 냈던 걸까? '어른이 아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탓이 크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학생이라는 사람들을 상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데 말이다.
교생 실습 기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해주실래요?'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지도 교사에게 지적을 당한 적이 있다. 학생에게 '존칭'을 사용하면 학생이 교사를 만만하게 본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존중해주는 것은 좋지만, '~해요' 정도의 '가벼운 존댓말'만 사용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내가 학생에게 존댓말을 하거나 학생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지도 교사는 나를 불러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면 학생들이 기어오른다'고 경고했다.
기어오른다는 표현이 참 이상했다. 나는 나무가 아니고 학생들은 나무늘보가 아니다. 나와 학생들은 '수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학교에서 만난 동등한 존재일 뿐이다. 나는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 앞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서로 합의한 것이라면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내 마음대로 정한 기준으로 권력을 부리기 위해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반말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교사가 정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학생이 있으면 '교실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건 기본이고, 각종 인신공격을 쏟아낸다. 학생의 물건을 마음대로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직 교사의 기준과 교사의 판단으로 인해 학생들은 각종 공격을 받는 것이다. 학생을 지적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많은데, 특히 '사회화의 첫 단계'로 여겨지는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생활 습관을 교정하고 바른 어린이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모든 기준은 오직 교사의 시선에서 정해진다. 교사가 보았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면, 막말을 해서 상처를 주었더라도 모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교사보다는 무시해도 괜찮은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