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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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중단 여성'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
'노래 듣고, 여유롭게 여행하며,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이왕이면 여행 작가는 어떨까?'
삶의 목표를 어디로 둬야 할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할지. 삶의 물음표만 가득했던 나의 20대. 나는 이렇게 일기 썼다. 한창 <걸어서 세계 속으로> 다큐멘터리나 세계 배낭여행을 떠난 여행 작가의 글에 심취해 있을 때다.
매일 눈 앞에 펼쳐지는 낯선 일상, 그것을 누비며 뜀박질하는 심장 박동 소리를 부러워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포도알이 채워진 걸 뿌듯하게 보며,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감상을 매일 적었다. 글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어느새 대학 졸업생이 됐다.
나는 컴퓨터도 아닌데, 높은 사양의 스펙을 맞추기 위해 발버둥 쳤다. 토익 900점, 한국어능력시험 등 각종 자격과 시험에 몰두해 오전 5시 눈을 떠 첫차를 타고 토익학원에 갔다. 참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었다.
시험을 재미로 치는 건 아니지만, 재미가 없으면 능률도 안 오른다. 당연히 점수는 꾸준히 오르지 않았다. 토익 성적을 받아 들고 좌절할 때, 운 좋게도 난 점수와 자격증과 상관없이, 대학교수님 추천으로 지방의 한 신문사에 입사했다(물론 취재실습, 면접 등을 치렀다).
운은 좋았지만, 내 실력은 형편없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다' 블로그에 일기 쓰는 수준으로는 신문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기자에게 기본은 글빨(?)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낮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정신력, 취재원의 말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 처음 본 사람과 넉살 좋게 어울리는 친화력, 불편한 장소에서도 서슴없이 질문하는 뻔뻔함 등이 필요했다.
"이걸 기사라고 썼냐?!"
팀장과 국장의 고함을 들어가며 찍어낸 기사들 덕분에 글빨은 나날이 상승했다. 뭐든 하는 만큼 는다고, 입사 초기 기사 1건을 쓰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는데, 1년 뒤 1건당 30분~1시간이면 써내는 능력이 생겼다. 기사는 자장면 배달처럼 '신속', '정확' 해야 했다.
그런 내게, '경력 중단 여성'은 딴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다. 출산 육아를 반복하다, 6년간의 기자 생활을 정리해야 했고, 경력 중단 여성이 됐다. 결국 내게 남은 건 '글'이었다. 내가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실력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것이었다.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아
경력 중단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일로서 만나는 사람 앞에 나를 증명해야 했다. 첫인사에 건네는 명함이 필요했고, 새로 만드는 명함 내 이름 옆에 붙을 마땅한 직함이 '작가' 말고는 없었다. 작가라는 직함이 무겁게 다가왔다.
'네가 은희경, 김애란, 김유정 작가님들과 같은 직함을 쓸 정도로 능력이 되니?'
내게 묻는 질문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질문에 답하지 못한 나는 '작가' 라는 직함 대신 '글 짓는 사람'이라 명함에 적었다. 예술인활동증명서, 출판서적 등 자신이 작가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이제야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앞에 내 보이는 일을 하는 내게, 그런 증명서 따위는 없었다.
'공모전에서 수상하거나, 등단해야겠어!'
증명서가 없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대학 졸업생 때의 나처럼 '공모전' 문구가 보이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수많은 공모전 결과 발표날, 내 이름은 없었다. 때때로 모아둔 에세이로 출간 기획서를 성심껏 적어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귀하의 옥고를 출판하지 못해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출판사님. 정말 애석하면, 이런 문구 보내지 말고 출판하는 건 어떤가요?'
내 마음의 외침과 달리, 출판사마다 오는 메일 내용이 똑같았다. 좌절해도 쓰고, 넘어져도 쓰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쓰는 것밖에 없어서 나는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간마다 날 일으켜준 건 책과 메일로 만난 글 선생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