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시들한 게 아픈 날 닮은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단다.
김정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진행 전 선정조사 상담을 위해 어르신을 방문했을 때 우울하다고 말을 하지만 자신의 우울증은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비슷한 말씀을 하시며 우울증이라고 하면 격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 경미한 상태에서는 그래도 내가 좀 우울한 것 같아, 마음이 좀 거시기 할 때가 있지, 이런 게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지 라고 말씀하셨다.
노인 우울척도검사 결과에서 총 15점 중 11점 이상으로 우울점수가 중증우울로 나타났는데도 대부분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난 우울증 없어, 내가 환자여? 그런 거 하려면 다음부터는 오지 마!"
"나한테 그런 말 하려면 난 이제 이런 거 안 할 거여."
"난 글씨 같은 거 쓸 줄 몰라, 나보고 이런 거 하라고 하지 마."
오늘은 반려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거라고 하니 호통을 치며 안 하겠다고 했다. 준비물을 하나둘씩 꺼내놓고 '안 하시면 대신 해드리겠다'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슬그머니 네임펜을 손으로 잡으셨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뭐라 할지 모르겠다며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혼자말처험 "우리 손자 이름이 영희, 청수여" 라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이름을 지어내는 것도 사연도 모두 다르다.
"우리 손주들이 미국에 있어서 이름을 자주 못 불러, 그렇게 손주 이름으로 해야겄네."
"나는 애들이 잘되면 그것으로 됐어, 애들이 먼저지, 아들딸 이름으로 지어줄 거여."
안한다고 뒤돌아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님은 그렇게 손주들 이름을 불러주셨고, 자녀들 걱정이 늘 자녀 이야기만 하시던 어머니는 아들 딸 이름을 붙여주며 정겹게 불러주셨다.
"야는 나 닮아서 시들시들 한가벼, 물도 잘 주고 햇볕도 쐬어 줬는디 왜 시들시들한 건지 모르겠네, 너는 날 닮아서 시들시들한 거니? 쑥쑥 잘 자라라고 '쑥쑥이'라고 지어줄게 쑥쑥 잘 자라거라."
최근 몸이 아파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화초가 아픈가 보라며 자신을 닮아 그런 것 같다고 물도 더 잘 주고 햇볕도 잘 쐬어서 튼튼하게 잘 키우겠다며 이름을 쑥쑥이, 튼튼이로 지어주셨다.
자녀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