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도소 정문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2013년 9월로 시계를 돌려보려 한다. 당시 해남교도소 수용자 김아무개씨는, 광주교도소의 수감 당시 상황에 대해 편지 2통을 작성했다. 그 뒤 1통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다른 1통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발송하기 위해 해남교도소에 제출했다.
해남교도소는 이후 김씨가 제출한 각 편지를 개봉하여 검열한 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송을 불허했다.
김씨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는 ▲수용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법무부장관 청원 등을 해도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유야무야로 넘어가기가 다반사이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된 수용자가 자신으로부터 티셔츠를 갈취 당했다고 무고했으며 ▲이에 따른 보복성 검방 때문에 자신이 독방에 조사수용 되었다는 내용이었다(이후 김씨는 티셔츠를 갈취당했다고 주장한 수용자를 무고죄로 고발했고, 검사로부터 해당 수용자를 무고죄로 약식기소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김씨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는 '마약사범이 일반사범과 접촉할 수 없도록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당시 언론은 마약사범이 일반 수용자를 이용해 필로폰을 반입한 사건, 정신과 의사가 수감 중인 마약사범에게 향정신성 의약품을 제공한 사건, 마약사범이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공범과 수학 문제 형식의 암호문을 주고받은 사건 등을 보도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런 기사를 바탕으로, 수감 생활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여 마약사범-일반사범의 접촉을 막고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다.
법원 "판단 쉽지 않으나... 교도소 측 행위, 고의·과실 증거 없다"
약 1년 뒤. 2014년 4월 김씨는, 자신이 편지에 작성한 내용이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데도, 당시 해남교도소가 서신발송을 불허한 조치는 위법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200만 원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7단독(우광택 판사)은 김씨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해남교도소의 서신발송 불허조치는 위법하다고 인정,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김씨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에 대해서는 "원고(김씨)는 교도소 안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기재하였으나, 이 부분은 명백한 거짓 사실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피고(교도소)가 이를 이유로 위 편지의 발송을 불허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 사건 항소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박이규)는 원심을 취소하고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편지들에 발송금지 사유가 존재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는 듯하다"면서도, "발신 금지처분이 결과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처분행위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그 처분행위에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볼 사정까지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서신 발송 불허행위와 관련하여 그 고의,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이에 불복했다. "원심은 편지가 명백한 거짓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기재한 것이라면 명백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기왕에 발생한 사실에 대하여 해남교도소와 그 수용자가 평가를 달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는 상고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그의 불복이 소액사건심판법에서 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참고로, 소가가 3000만 원(당시는 2000만 원) 이하인 소액사건은 다른 사건과는 달리 "법률의 헌법위반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때" 등에만 상고를 허용하고 있다.
김씨의 편지에 다소 부정확하거나 감정적 또는 과장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김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주체는 해남교도소가 아니라 편지를 받은 방송국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송국은 편지를 토대로 취재한 결과 '거짓'이면 아예 방송을 하지 않을 것이고, 김씨 편지는 그대로 묻히고 말 일이다.
교도소가 먼저 편지 열어본 뒤 판단한 것, 자의적 해석 아닌가
그럼에도 해남교도소가 김씨의 편지를 개봉하여 살펴본 후 '거짓'이라고 단정을 짓고 편지 발송 자체를 가로막은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자들이 외부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을 때 편의에 따라서 '거짓이 명백하다'고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발신을 불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교도소 측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서신발송 불허조치는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법원이 내용상 발송금지 사유가 명백하지 않은 편지 발송을 불허한 해남교도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은, 교정시설에 만연한 서신 발송 금지 조치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5년 1월 해남교도소의 서신발송 불허조치의 근거가 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법률 자체가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