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야~ 평가 서류 다 제출했다."
완벽할 거라고 자신하면서, 우리는 평가 자료를 시에 제출하고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팀이라고 해 봤자 나의 후임과 나. 선임의 급작스러운 퇴사로 인하여 내가 선임이 되어버렸다. 이래저래 나의 업무량은 많아졌고 선임인 내가 다 처리해야 할 것 같은 투철한 정신까지 나오게 되었다.
후임 자리에 있을 때는 선임이 하는 것마다 못마땅한 것 같고 나도 저만큼은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살짝살짝 하고 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있어 모든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임과 알게 모르게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갈 때, 선임이 가족의 병세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퇴사해야 할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고 왠지 죄를 짓는 것처럼 그리고 나의 잘못인 것처럼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의 잘못으로 가족이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서로 속 시원히 대화도 나눠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두 달 빠른 선배.
미안한 마음에 먼저 문자를 보내보고 근황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선배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는지 답변도 빠르지 않고, 그마저도 아예 없을 땐 야릇하고 착잡한 마음이었다. 몇 달 후 선배의 복잡한 일들이 풀리고 나서 걸려 온 전화 정말 감사했다.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나에게 제일 미안했다고 말해 주는 선임의 마음에 감사드리고 지금은 가족의 건강이 좋아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자리에서 일해 보니 정말 일이 많더라고요. 선생님 일하시는 동안 정말 애쓰셨어요."
우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줄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보지 않으면 그 어려움과 편안함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사회생활에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시에 위탁받아서 하는 3년짜리 사업,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독거노인과 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시 지자체 주무관님은 열심히 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후한 점수를 주시지만, 전라북도를 총괄하는 거점은 우리 기관이 모든 일을 다 수월하게 잘 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가 갑작스레 평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 서둘러서 우린 평가 서류를 준비했다. 평가 서류 모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우리 팀의 과장님이 척척 자료를 만들어 결재를 완료한 후 시에 제출했다.
우린 모든 일이 끝났다는 기쁨에 점심을 근사하게 먹기로 하고 스스로 폭죽을 터트려 주었다. 코로나 접종 후 피로감과 갑자기 이루어진 평가 준비의 고단함을 보상해 주기 위해서 하루 휴가까지 내서 푹 쉬고 돌아왔다. 잘했다고 서로에게 나에게 토닥토닥 폭죽을 터트려 주고 상을 주었는데, 우린 폭죽을 너무 빨리 터트린 것 같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후임은 시에서 전화 온 내용을 정리해놓은 메모를 건넸다. 한숨이 나왔지만, '이것쯤이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오후 4시까지 자료를 만들어서 제출하였더니, 화요일 퇴근 시간 1시간 10분 전에 시에서 전화가 왔다. 거점에서 보충해 달라는 서류가 더 있다고 한다. 중간에 연결하면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으니 거점 담당자 선생님이 5시 10분에 전화를 할 거라는 이야기.
잘했다고 축배를 들었는데, 우리의 오만이었다. 잘한 점을 찾으려면 몇 개 안 되겠지만, 못 하는 점을 찾으려고 하면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다. 평가 자료를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무슨 말인지 제가 잘 모르겠으니 다른 기관 샘플 자료라도 보내 달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는 소리만 나올 뿐이다. 어쩌겠나. 우리 기관 위탁 받은 사업이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계약직 직원일 뿐이다.
"선생님 못 하겠어요."
"왜 못 하겠어요. 시키면 해야죠."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내일 출근해서 서류를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책 한 권을 들고 우리 집 빨래 건조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내 자전거에 올라갔다.
▲ 실내자전거와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김재완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의 씁쓸함을 달래고 나의 꿈을 찾아본다. ⓒ 서경숙
얼마 전에 군산 예스트서점에서 만난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였다. <오마이뉴스> 4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김재완 작가님. 허지웅, 은유, 배지영 작가와 함께 '4대 작가'에 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셨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님의 본캐와 부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꿈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는데, 오늘 나의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요즘 계약직 사회복지사의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침에 있는 일이 아니라, 정말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주민과 함께하는 일을 직접 하고 싶었다. 내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당선돼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생각과 이직, 퇴직 고민이 머릿속을 스쳤다.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읽는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는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다. 작가님은 새해 첫날 출근했는데, 한 마디 통보도 없이 책상이 없어지고 직위가 좌천되고 한 번도 해 보지도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났단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황장애까지 겪으면서도, '부캐 작가'라는 꿈으로 견뎌왔다는 내용은 오늘의 씁쓸함을 달래주었다.
'그래 나도 잘하는 게 있잖아, 작가님처럼 혼자 글을 쓰며 노는 것을 좋아하고 행복해하고 만족하고 있잖아, 오늘 같은 일들은 직장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이 생기는 일이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잖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계약직이지만, 난 열심히 일한다. 뒤늦게 이직한 만큼 열심히 일한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내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잘했다고 성급하게 축배를 들고 폭죽을 터트린 것 또한 나의 불찰이다. 좀 더 신중하게 확인해 보았다면 우리가 터트린 폭죽이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재완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언제 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고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나의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내일 출근하자마자 열심히 오늘 불합격 받은 평가 서류들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세상에 늦은 때란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