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문제를 청년과 함께 꼼꼼히 살펴봐 주십시오"

[인터뷰] 민티크 양과자점 운영하는 신혜민씨의 따뜻한 대한민국

등록 2021.06.01 13:33수정 2021.06.0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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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티크 양과자점을 운영하는 신혜민씨 .
민티크 양과자점을 운영하는 신혜민씨.최미향
 
"보건학을 전공하면서 제법 큰 병원에서 근무도 해봤고, 다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여 유치원 교사를 하기도 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나랑 참 잘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동안 하나하나 적어 두었던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 순간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치고 민티크를 오픈했다"며 환하게 웃는 서른 살 신혜민 대표.

비가 내리던 지난 28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오전 일찍 충남 서산에 있는 '민티크 양과자점'을 들렀다.

- 가게가 참 이쁘다. 다들 코로나로 힘들어하던데 가게를 오픈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안 그래도 많은 분들이 그런 소리를 하던데 저는 별로 신경 안 써요. 사실 제 버컷리스트 첫 줄이 바로 파티쉐였어요. 제가 구운 빵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고, 저는 그것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고... 그러다보면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나갈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거예요. 시설에 있는 친구들 챙겨주기,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봉사하기, 갈매기 밥 주기 등. 감사한 것은 가게를 열면서 석남보육원에 과자를 후원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제가 다 배부른 것 같더라니까요. 저는요. 정말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암울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청년창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뭐였나?
"대한민국에서 청년이 창업하기에 어떤 것 같아요? 너무너무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에요. 제 경우는 첫 번째 문턱에서부터 걸리고 말았어요. 청년창업 대출을 받기 위해 알아봤거든요. 카페나 구움과자 베이커리는 레드오션이라는 거예요. 한마디로 비전 없다고 제외시켜버린 거죠.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제가 오픈하고자 하는 업종은 조건 자체가 안되는 것이라 단 한 푼도 대출해줄 수 없다는 행정에 기가 막혔습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성공을 낙관하기 힘든 시장이니 그렇다면 도전 자체를 하지 말라는 소린가요? 그건 누구 생각인가요?

사업자 초기자본도 그래요. 저는 왜 해놨는지 모르겠어요. 6개월이 지나야 사업자금을 받을 수 있다는데 그럼 업장이 수익을 내야만 해주겠다는 심산이잖아요. 잘 되는데 왜 대출을 받겠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듣는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이것은 의지 있는 청년들의 사기를 한 방에 꺾어버리는 행정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셀프인테리어를 한 신혜민씨 .
돈을 아끼기 위해 셀프인테리어를 한 신혜민씨.최미향

- 청년창업대출이 막혀버렸다면 오픈하기까지 상당히 고전했겠다.
"청년창업대출만 생각하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는데 안된다니까 순간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괜히 직장을 관뒀나. 투잡을 해야 하나. 하긴 두 개를 하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결국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거야.' 진짜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다 아이디어를 낸 게 '그래 이왕 계약했으니 엔틱하게 나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죠.


그동안 모은 돈과 약간의 차입으로 셀프인테리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나무를 재단해서 석고벽을 세우고 등등 온갖 머리를 짜내어 인테리어를 해나갔어요. 주위의 도움도 큰 힘이 됐구요. 죽으란 법은 없더라구요.

젊음이 이럴 때 좋더라구요. 대책없는 용기와 희망같은 거요(웃음). 코로나에 젊은 청년이 맞서 싸우는데 해보지도 않고 질수는 없잖아요. 자주 생각했어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힘들게 걸어온 만큼 초심을 잃지 말자고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문을 열었답니다. 가오픈이었는데 의외로 입소문을 타더라구요. 지금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에 태아나 걸음마를 옮긴 것처럼 그렇게 한 발짝 또 한 발짝 천천히 떼다 보면 언젠가는 당당하게 세상을 걷을 거라고요."

- 가게를 오픈한 것에 대해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
"친구들이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는데 엄청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은 주로 4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권고사직을 권유하든지 아니면 퇴직을 강요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대한민국 청년들은 참 불쌍해요. 겨우 10년 일할 것에 대비해 죽자고 공부에 매달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격조건을 얻기 위해 경쟁 속으로 끝없이 떠밀려 들어가고. 청년들이 어디 설 자리는 있을까요?

이것도 그래요.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가보면 경력직을 뽑아요. 아니 청년들이 취업을 못 하는데 어떻게 경력이 주어지나요. 청년들이 날고 뛰어도 그들이 원하는 경력직 세글자는 얻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취직이 되겠어요. 하다 하다 안돼서 창업하려 해도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그럼 가난한 청년들이 무슨 수로 취업을 하고, 무슨 수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시는 분들을 케어해 나가겠습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늘 얘기하죠. '우리가 잘 돼야 너희들이 잘된다'고요. 달리 생각한다면, 뿌리 깊은 병든 나무의 새싹은 안타깝게도 새싹조차 병들어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나라가 있다면?
"스위스가 기억에 남아요. 그 나라 친구가 '스위스에 머물러 달라'며 '한국도 스위스처럼 매력적이냐'고 묻는 거예요. 차마 말할 수 없어 '아 물론'이라고 말했어요. 그 나라는 점심시간에 문을 닫고 공원을 걸어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즐기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 생소했고, 그다음에는 너무 부러운 거 있죠. 돈이 없어도 마음이 여유로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이 없어도 마음이 부자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청년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요. 더 중요한게 있다고 봐요. 저는 청년도 청년이지만 사실 청년이 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제발 좀 바뀌기를 바래요. 말이 선진국이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아요."

-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이기를 원하나?
"제일 좋아하는 문구는 '따뜻한 대한민국'이에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래요. 청년들도 중요하지만, 그다음 청년이 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취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전에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니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정말 당황스러운 대답이 나왔어요. 초등학생 아이의 입에서 '공무원'이라는 답이 나온 거예요. 그것도 코로나 때문에 취직도 안 되는데 대학 안 가고 공무원 준비할 거라면서요. 취직과는 거리가 먼 나이의 상당수 아이들이 벌써부터 취직을 걱정하는 나라가 됐어요. 가히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중·고·대학생들의 대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게 문제예요. 그만큼 대한민국은 지금 취직이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린아이들까지 취업 걱정을 하는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말로만 백 년을 내다보는 교육, 청년 실업 문제, 저출산율에 따른 국가경쟁력 감소와 소비둔화 조짐 발생 등을 논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좀 더 실질적인 문제점이 뭔지 청년들과 함께 꼼꼼히 살펴봐 주십시오. 청년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청년이 열심히 하는 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보듬고 챙겨주십시오. 제발 청년이 희망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들리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민티크 양과자점을 운영하는 신혜민씨 #청년이 말한다 #청년보다 더 급한 사람은 쳥년이 될 청소년 #쳥년이 설 자리는 어딘가요? #청년실업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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