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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된 의료민영화, 보험금 청구 간소화로 시동?

보험업법 개정안 문제점 토론회... "공공성 무너질 수도" vs. "의료민영화와 무관"

등록 2021.06.02 15:37수정 2021.06.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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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국회에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으로 제기된 보험업법 개정안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2일 국회에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으로 제기된 보험업법 개정안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참여연대
 
"미국식 의료민영화의 핵심은 건강보험당연제 폐지, 보험사에 공적 의료정보 제공, 보험사와 의료기관의 직접 계약 등입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라는 명분으로 공적 의료정보를 보험사에 넘기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으로 제기된 보험업법 개정안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발제에 나선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의료민영화를 위한 초석'으로 정의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 38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관련 종이 서류 제출을 전산화하면 보험사가 대량의 민감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되고, 이를 보험금 지급 거절 등에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 대표는 "보험회사들이 전산으로 개인 의료정보를 받는 것이 정말 보험금 청구 간소화에만 기여하게 되는 것인지, 불필요한 위험성이 너무 크진 않은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보험사기를 걸러내는 장치로 청구 간소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점의 모순을 지적했다. 우 대표는 "보험사들은 일부 보험이용자의 과다 위험을 찾아내기 위해 진료 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은 원래 예상할 수 없는 일부의 위험을 여러 보험자가 나눠 가지는 구조"라고 했다. 

이어 "보험업계는 2008년에도 보험 청구의 14.4%가 보험사기라고 주장하면서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며 "이는 당시 의료민영화 반대 시위에 부딪혀 통과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의료민영화 시도 당시 보험사는 건보 자료를 요구했다


그는 "최근에도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를 가져가니 이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며 "하지만 정말 위험이 큰 이용자를 배제하려면 보험 상품을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 대표는 발의 법안상 보험사가 제공 받을 수 있는 서류의 종류가 목적에 비해 과다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고용진 의원의 발의안을 보면 진료계산서와 영수증, 또 금융위원회가 고시하는 서류 등을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하지만 영수증만으로도 청구 간소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보험금 청구와 관계없는 급여항목 진료 정보를 보험사가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디지털 정보는 축적하기도, 제3자에게 연계하기도 쉽고, 유출도 쉬워 (종이 서류에 비해) 위험성이 극도로 크다"며 "앞으로 축적 관련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 대표는 "과거 병원과 연계해 정부 보험을 포괄적으로 대체하고, 개인 의료정보를 축적해 건강보험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전략을 내세운 보험사 내부 자료가 발표돼 파문이 인 바 있다"며 "(청구 간소화 등)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건강보험 공공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개인 의료정보를 민간기업에 넘기는 것은 극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번 동의하면 끝? 동의 철회권은 어디로

토론에 나선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도 발의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그는 "전재수 의원 안을 보면, 보험사가 의료정보를 사용한 뒤 삭제하도록 하는 조항이 전혀 없다"며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는 보험사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정보주체가 건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행정기관에 본인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게 한 전자정부법이 통과한 상황"이라며 "관련 대통령령에서 '제3자'에 보험사 등 금융기관을 포함하게 되면 개인 의료정보가 넘어갈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그는 "정보 제공에 동의했더라도 그 동의를 철회할 권한을 줘야 하는데 이런 내용은 보험업법 개정안 발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개인정보 집적 시스템 구축이 국민 권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배타적 권리가 없는 민영보험사가 개인 의료정보를 가져간다는 것은 공과 사의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경쟁형 보험 체계를 괴담으로 얘기하겠지만, 막상 (정보제공 길이) 뚫리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보건의료 부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응급, 분만 등 상황에서 의료공급자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부담한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에 대한 편의성은 우선순위에서 뒷부분에 해당한다, 보험금 청구 간소화 법안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도 "유럽연합에서는 정보 처리에 대해 정보주체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고, 사전에 본인이 동의했더라도 평가 등에는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법률에는 그런 것이 없다"며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가 장기간 수집돼 목적 외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보호장치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개인정보를 보험금 지급에만 사용하려는 것이라면 정보를 열람만 하고 저장은 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민영화 발판? 황당해" 반박도

보험업계와 정부는 의료정보 처리 등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보험금 청구가 불편하다는 민원이 오랜 기간 지속하면서 마련됐다"며 "미국식 의료민영화를 위한 발판이라는 주장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내역서는 지난 20년 동안 환자들이 병원에서 발급받아 보험사에 내는 증빙 서류 중 하나"라며 "이를 두고 의료민영화나 고객정보 무단 사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가입자의 동의는 기본이다, 금융사가 금융정보를 독단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며 "청구가 전산화하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은행, 증권사 역시 금융거래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받고 (일정 기간 보관한다)"며 "보험사는 왜 열람권만 가져야 하는지, 어떤 법률적 근거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 부장은 "대다수 국민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 근거 없는 의구심을 거두고 협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보험정책과장도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경우 청구 전산화 시스템이 마련돼있는데, 그동안 정보 유출 문제는 없었다"며 "실손보험 가입자에게도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전산화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가 정보 제공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전산 정보가 무작위로 넘어가지 않는다,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건강보험 보장률이 60%인 상황에서 의료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실손보험 #보험 #의료민영화 #보험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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