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고등학교 학생회 미얀마 민주화 시위 지지 영상의 한 장면
살레시오고등학교 학생회
우리 학교 학생회 아이들을 자랑하고 싶어 멀리도 돌아왔다. 솔직히 작년 학생회장 선거 결과를 받아들고 담당 교사로서 적잖이 당황했다.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 예상했던 아이는 떨어지고, 득표율에서 꼴찌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이가 외려 큰 표 차로 당선되었다.
그가 내건 공약이 조금은 황당했고, 하다못해 만든 선거 홍보물조차 성의가 부족해 보였다. 졸업을 앞둔 고3의 장난기 섞인 투표가 당락을 결정한 모양새여서, 할 수만 있다면 선거 자체를 무효로 처리하고 싶었다. 동료 교사들도 의외의 결과라며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에 대해서 아는 건 없었다. 수업 시간에 만난 적도 없고, 친구들로부터 그에 대한 평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저 학생회장 선거에 나선 이유와 교과 성적이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홍보물에 붙인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긴 동급생이었던 다른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무난한 당선과 낙선을 예상했던 근거는 교과 성적에 눈길이 쏠렸기 때문이다. 후보자 간 성적 격차는 선거를 지켜보는 교사들의 주목도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교사로서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학생회 일도 잘하고 친구들의 지지도 받을 거라는 생각은 교사들의 착각이었던 셈이다. 학생회장이 된 그는 함께 일할 부장단을 꾸렸고, 코로나 와중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시로 회의를 주재하는 등 역량을 발휘했다. 담당 교사와의 '케미'도 예상외로 좋았다.
모두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학생회실을 지켰다. 유난히 행사가 많은 학교라 힘들 법도 하건만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가 학생회실과 방송실, 강당, 교무실 등을 수시로 오가다 보니, 일과 중에 그와 열 번도 더 마주친 날도 있다.
미얀마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지난달 5.18 즈음, 매일 방과 후에 학생회가 무척 분주해 보인다 싶더니 영상 작품 하나를 들고 왔다. 학교에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소품도 준비하고 직접 연기도 한 6분짜리 영상이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응원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했다.
일전에 학생회장이 미얀마 민주화 시위 응원을 위한 티셔츠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미 그때 영상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응원의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학생회 아이들은 당분간 교복 대신 이 티셔츠를 입은 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영상을 보고 좀 울컥했다. 미얀마 시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연기일지언정 하나같이 진지한 그들의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여태껏 이해타산적이고 삭막하다고 싸잡아 나무라왔는데, 그릇된 편견이었음을 반성하게 됐다.
제작에 참여한 학생 중엔 얼마 전 급식소에서 내게 버릇없다고 혼쭐이 난 아이도 있다. 당시 그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 하나의 행동으로 되바라진 아이라고 단정했던 게으른 생활지도 관성을 또한 반성했다. 나중에 오가며 그를 마주치게 되면 '하이 파이브'를 건넬 것이다.
그들이 만든 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교육은 기다림'이라는 금언을 떠올렸다. 그 말을 '함부로 아이를 판단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계기가 됐다. 한낱 계량화한 성적 따위로 아이들을 품평하려는 건 야만적이다. 연재의 제목처럼 '아이들은 나의 스승'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부디 학생회 아이들의 정성이 담긴 이 영상이 온갖 고통을 겪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오늘도 가방에 '세 손가락 배지'를 달고, 'Everything will be OK!'(다 잘 될 거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0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교사도 울컥... 고교생들의 미얀마 민주화 응원 영상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