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이야기꽃
힘줄이 툭 불거진 내 손이 무색하게 그림책 속에는 말 그대로 '연륜'이 고스란히 새겨진 송정마을 어르신들의 손이 담겨있다. 밤잠을 줄여 물을 대며 농사를 짓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 무거운 견칫돌(현대식 석축을 쌓는 데 쓰는, 앞면이 판판하고 네모진 돌)을 쌓고, 연탄배달하다 고장난 트럭에 사람들 구하려다 손을 물리기도 하고, 고운 색시의 손으로 나룻배 젓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술마시고 논두렁에 자빠지는 남편 대신, 손에다 흙 안 묻히는 아버지 대신, 애들 목구멍에 밥넣어줄까 고것 하나만 생각하고 손을 움직거려, 손을 불끈쥐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절은 이제 투박한 거죽으로, 뭉툭하게 닳은 손톱으로, 그리고 검은 눈금같은 주름을 가진 손이 증명한다.
어르신들의 손은 지나온 삶이 담긴 한 장의 사진처럼 그분들 삶의 내러티브(이야기, 서사성)가 응축되어 있다. 지나온 시간은 늘 '미션 임파서블'과 같았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삶의 미션들을 각개격파로 무찔러 왔다. 장맛비에 넘쳐나는 제방이, 제동장치가 고장난 트럭이, 이백근이 넘는 돌덩이같은 미션들이 압도해 왔고, 그 '임파서블한 미션'들을 '파서블'하게 헤쳐나오고 나니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남았다.
'20세기에 들어 사회 과학은 과학적 인과 관계로만 해석할 수 없는 사회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다른 접근 방법을 시도한다. 이른바 '서사적 전환'(브루너), 한 편의 '이야기'처럼 흐름을 따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산다> 참조). 한 사회가, 그리고 한 사람의 생애가 과정으로써 수용되기 시작했다.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손'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책 오른 편 노인 한 분, 한 분의 '내러티브'는 왼편 그 분 손의 삽화를 통해 보다 강렬하고 호소력있게 우리에게 그 분들의 삶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