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 대표에 도전한 나경원(오른쪽부터), 주호영, 조경태, 이준석, 홍문표 후보가 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토론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아이들은 이준석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과학고에 진학하고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하버드대까지 합격했으니 그 노력을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많지만, 그만한 학업적 성취를 거둔 이는 드물지 않느냐며 두둔했다.
압권은 그의 당선은 당연하고도 공정한 결과라는 한 아이의 주장이었다. 스펙을 기준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해봤다는데, 듣고 있던 아이들은 억지스럽다고 키득거리면서도 일리가 있다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후보자별 득표율 순위와 그들의 학벌 서열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후보자별 출신 대학을 보면, 1등은 하버드대, 2등은 서울대, 3등은 영남대, 4등은 부산대, 5등은 건국대 순이다. 하위 3명의 득표율을 모두 합해도 2등에 미치지 못한다며, 서울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보다, 서울대와 비(非)서울대의 격차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인-서울' 대학이 지방대에 밀린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법대와 농대, 공대 등 전공 학과의 차이라는 건데, 지금의 수능 합격선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후보자의 인지도 차이는 애초 논외였다. 학벌에 따른 차별을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기는 아이들 앞에서 반박할 말이 혀끝에서만 맴돌았다.
한편, 다른 모든 대학을 무릎 꿇린 서울대라도 하버드대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단다. 아이들은 학벌 구조를 골품제에 비유했다. 하버드대 출신이 성골이라면 서울대는 6두품 정도에 불과하다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까지 끌어와 설명했다.
서울대는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바라볼 수라도 있지만, 하버드대는 '넘사벽'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듯 하버드대가 서울대 위에, 서울대는 나머지 대학들 위에 군림하는 건 아이들에겐 공정한 질서다. 아이들이 이른바 'SKY' 출신이 고위 공직과 기업의 임원을 독식하는 현실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겁이 났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4년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애초 기회가 평등하지 않으면 과정이 공정할 수도, 결과가 정의로울 수도 없건만, 그들은 그 '인과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고 여길 뿐이다.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된다. 그들은 기회의 평등까진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을.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도 없는데 무슨 기회의 평등이냐며 눈을 흘긴다. 그저 과정만이라도 공정하길 바란다. 그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을 불신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도리어 정의로운 결과인가를 따지기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걸 정의롭지 않다고 여긴다. 각자 출발선이 다른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오로지 결승선에만 쏠려있어서다. 이준석을 향한 시선 역시 당선과 하버드대에 꽂혀있을 뿐, 유복한 가정환경과 그의 부친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은 쉽게 무시된다.
수업 때마다 머지않아 학벌이 아무런 효용이 없는 시대가 온다고 강조해왔는데, 아이들의 공고한 학벌 의식을 확인하고 나니 뒷맛이 개운찮다. 지금껏 쇠귀에 경 읽기였나 싶어서다. 내 말에 수긍하기는커녕 현실을 외면하는 철부지 이상주의자로 보는 냉찬 시선마저 느껴진다.
아이들은 하버드대 출신의 유명 방송인 이준석을 선망했다. 그의 스펙을 칭송하며 실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그의 주장에 찬성했다. 그들은 헌정사상 최연소 야당 대표로 당선된 그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낼 준비가 돼 있다. 이번 선거는 어쩌면 전초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요컨대, 평등과 공정, 정의에 대한 10대 후반 아이들의 인식은 50대인 나와 천양지차였다. 세대 차이로 눙칠 수 없는 차이였다. 그들이 이준석을 선망하고 지지한다는 건,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실력에 따른 차별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의 반응에 덜컥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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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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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나왔잖아요" 당 대표 선거 결과가 학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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