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점점..." 전화 한통에 발벗고 나선 친구들

삽교고 11회 동창들, 아픈 친구 수술비 2천만 원 모아

등록 2021.06.21 14:14수정 2021.06.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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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문을 위해 의기투합한 삽교고 11회 동창과 선후배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문을 위해 의기투합한 삽교고 11회 동창과 선후배들. ⓒ <무한정보> 김수로


삽교고등학교(충남 예산군 삽교읍 소재) 11회 졸업생들이 30년 넘도록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벗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지난 3월 초 장성종씨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동창인 '땜보(학창시절 별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여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당시 땜보씨는 지병으로 눈이 나빠져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가 좋지 않아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그가 있던 곳은 병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경색이 찾아왔고, 당장 수술비마저 여의치 않았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동문들은 이튿날부터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친구와 선후배 모두 십시일반 마음을 보탠 덕에 일주일여만에 2000만원에 가까운 큰돈이 모아졌고, 그는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이들의 '친구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일 아침, '삽교고'가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50대 청춘들은 땜보씨 집 마당에 모였다. 아픈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80~90대인 부모님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낡은 건물을 손보기 위해 두팔을 걷어부쳤다.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벽은 말끔히 도배를 하고 전등을 바꿔 집안을 환하게 밝혔다. 교체한 싱크대에는 새 수저와 그릇을 채웠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기 힘든 어머니를 위한 식탁과 앞이 보이지 않는 땜보씨가 간편하게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도 마련했다.

동문들의 뜻을 모으는 데 앞장선 11회 김주송 회장과 이덕희 총무는 서울에 살지만 친구를 돕기 위해 자주 고향을 찾고 있다. 16일 삽교고 선배가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만난 이들은 "아까 집에 가봤는데 어머니랑 아버지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더라고요. 처음에 수리하러 갔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보이셔요"라며 기뻐했다.


김 회장은 "땜보랑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어요. 졸업한 뒤로도 종종 만났고요. IMF를 겪으며 사정이 어려워진 건 알고 있었는데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우리가 나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라며 빙 둘러 앉은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를 전했다.
 
 친구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낡은 집을 손봤다.

친구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낡은 집을 손봤다. ⓒ 삽교고총동문회


총동문회도 적극 동참했다. 신선균 재무국장은 처음 소식을 접한 뒤부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집수리공사를 할 때는 전기·수도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동문들을 섭외했고, 땜보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기 위한 사무업무도 도맡았다.

땜보씨는 "학교 다닐 때 잘 어울리던 친구들인데 이렇게 도움을 줘 정말 고마워요. 선후배들에게도 감사해요"라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지난 2020년 눈 수술을 하고 뇌경색이 와 더 나빠졌어요. 앞을 볼 수 없게 돼 불편한 점이 많지만 친구들 덕에 이겨내고 있어요" 그가 씩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땜보씨는 오는 7월 눈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 총무는 그가 다시 세상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삽교고 동문들이 참여하는 SNS에 '땜보야 힘내'라는 이름으로 응원메시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때론 환히 빛나고, 때론 막막해지기도 하는 우리 인생에서 변함없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벗이 있어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우정 #친구사랑 #삽교고총동문회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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