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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캠페인은 정치적" 화성시자원봉사센터는 왜?

[의견]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등록 2021.07.02 10:17수정 2021.07.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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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 5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179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 5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유성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6월 14일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 성적 지향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이 법의 제정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 결과다.

우리 경기도 화성시에서도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서 함께 힘을 모았다. 특히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거리 캠페인에 나선 것은 특기할 만하다. 향남고등학교 학생동아리 'BARAN,da'에서는 또래 학생들 하교시간에 맞춰 향남읍 화성우체국 사거리 곳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청원운동을 소개했다.

무더운 날씨에 자발적으로 거리에 서 보겠다고 나선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화성시 자원봉사센터'에 '봉사활동 인정'을 요청했다. 센터의 답변은 '차별금지법 캠페인은 정치적인 내용이라 자원봉사기본법에 따라 봉사시간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주 친절하게도 '청소년이 같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런 내용의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잠시 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정치적인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동아리에서 '교통약자'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다가 '차별금지법'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장애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이유로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을 겪는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까지는 누구도 '정치적인 것'이란 딱지를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직시하고 해소해나가자는 '차별금지법'으로 이어지면 '정치적인 것'으로 둔갑하게 된다는 것일까?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도, 도무지 어느 지점에서 '정치적인 것'이란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 그리고 대체 '정치적인 것'이란 근본적으로 뭘 가리키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정치적인 것'이란 참으로 모순적이다. 이미 작년 총선부터 만18세로 선거연령이 인하됨에 따라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있는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선거 때마다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의 '각급 학교들'에서는 '신성한 교육의 공간'에서 정치를 몰아내기 위해 노골적인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유권자로서 첫 투표를 앞둔 우리 새내기 시민들은 도대체 어디서 정치를 배워야 하나?

모순적인 것이 어디 이것뿐이랴. '생활정치'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스스로 자기가 어느 정당 소속인지 자연스럽게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중 당적이 금지된 현행법 아래서 모르긴 몰라도 아마 거대 정당 모두에 이름을 올려둔 시민들도 적지 않을 텐데, 일상에서는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는 것이 마치 '객관적, 중립적'인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객관성'은 스스로의 중심과 기준이 단단하게 섰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객관은 늘 '무조건 가운데 서기'로만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만 되묻고 싶다. 그렇게 전 사회가 '객관성, 중립성'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소리 높여 외쳐 온 대한민국 사회는 그래서 지금 충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가? 아마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표류하고 있지는 않을 게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시민은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현대사회의 '민주주의'란 기실 '정치의 보편화, 일상화'와 다르지 않은 말이다. '민주주의'는 숭상한다면서도 '정치'는 멸시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성큼 딛고 넘어서지 않고서야 어찌 '새로운 사회'가 오겠나.


4년 전이었던 2017년 5월, 당시 '박근혜 탄핵' 이후 실시된 '장미대선'을 앞두고 화성에서는 인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거리 모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소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모의투표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했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실무를 계획하고 진행한 이들도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 스스로였다는 점이다.

모의투표 과정과 엄정하게 개표된 결과에 관심을 갖고 여러 방송사,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다. '화성시 자원봉사센터'는 당시 이 학생들의 모든 활동을 '봉사시간으로 인정' 했다. 4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차별금지법 #화성시자원봉사센터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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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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