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교조 최제우의 포교 가사집 <용담유사>.
안병기
『동경대전』을 간행하고 교단의 조직을 정비한 최시형은 수운 스승이 일반 백성과 여성들에게 동학사상을 빨리 쉽게 전하기 위해 한글가사체로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를 펴내기로 하였다.
1881년 6월 충북 단양군 남면 천동리 여군덕의 집에 간행소를 차리고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이때 내용 중 「검결」은 삭제되었다. 고종 정부가 최재우를 처형할 때 바로 이 부분도 반역의 이유로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결(劍訣)」은 1861년에 지은 것으로 일명 '칼노래'로 불린다. 남원의 은자암에서 수도를 할 때 득도의 기쁨으로 이 검결을 짓고 '목검(木劍)'을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랴.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즛들어, 호호방방 넓은 천리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로 이어진다. 이 가사는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기도 했다.
『용담유사』의 주요 내용이다.
① 용담가(龍潭歌)는 수운이 득도한 바로 그 해에 지은 가사다. 전체가 4장으로 144수로 되어있다. 용담가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득도하였던 경주 구미산 용담의 아름다움과 득도의 기쁨을 노래한 가사다.
② 안심가(安心歌)는 수운이 득도한 해인 1860년에 발표한 가사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천대받던 여성들을 현숙하고 거룩하다고 떠받들면서 춘삼월 호시절에 태평가를 함께 부를 주체로 설정하고 여성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이다.
또한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토로하면서 수운 자신이 곧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지킬 것이니, 사람들은 안심하라는 대목도 있다.
③ 교훈가(敎訓歌)는 수운이 득도한 다음 해인 1861년에 지은 장편가사이다. 자질(子姪)들에게 내리는 형식으로 된 이 가사는 교도들에게 힘써 수도할 것을 당부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이미 모시고 있으므로 하늘 조화의 그 참된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믿는데서 창조의 바른 기운을 되살릴 수 있다고 했다.
④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이 가사는 1861년에 지은 것으로 수운의 출생, 성장, 득도과정, 득도내용 등을 설명하고, 꿈속에서 노소(老少)가 문답하는 형식을 통해서 조선왕조의 멸망과 새로운 동학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⑤ 도수사(道修詞), 수운이 득도한 뒤 고향에서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수도하기를 간곡히 당부한 글이다.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르친 연원도통(淵源道統)을 지키면서 성(誠)과 경(敬)으로 도를 닦기를 당부하고 있다.
⑥ 권학가(勸學歌), 수운이 전북 남원읍 은적암에서 1862년 새해를 맞으면서 각지에 있는 제자들에 대한 정회(情懷)를 가눌 길 없어 지은 가사이다. 수운 자신이 자각창도한 동학을 믿음으로써 다같이 동귀일체(同歸一體)할 것을 권유한 노래로서 어질고 뜻있는 사람 만나거든 시운시변(時運時變) 의논하여 백년신세(百年身勢) 말하거든 이 가사를 주고 결의해서 가르침을 존중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⑦ 도덕가(道德歌), 1863년 7월 경주 현곡면 등지에서 순회 설법하면서 지은 가사로 지벌과 문벌보다 도덕의 귀중함을 강조한 노래다.
⑧ 홍비가(興比歌), 1863년에 지은 가사로 『시경』의 노래체인 흥興(목적한 바를 끄집어내어) 비比(비슷한 다른 사물 등과 비교하는 것)를 사용하여 도를 닦는 법을 가르친 노래로서 도를 닦는 일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부터 요령 있게 행하는 데서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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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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