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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22번 언급한 그 단어... 자유주의의 역습

[주장] 공동체 없는 자유주의, 그보다 무서운 건 없다

등록 2021.07.08 17:38수정 2021.07.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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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자유주의의 역습'이 시작됐다.

지난 6월 29일 윤석열 전검찰총장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무려 스물두 번 언급하면서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대권에 도전한다고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자유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했고, 같은 당 이준석 대표 역시 그의 새로운 슬로건 능력주의는 자유의 기초 위에 가능하며 그것만이 진정한 공정으로 가는 길임을 설파하고 있다. 시장주의도 편승하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 이철호 칼럼리스트는 부동산은 "부동산일 뿐"이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이며 "상품"이라고 못박고 나섰다.

한국 자유주의의 수난

사실 빈곤하다 못해 천박한 수준의 한국의 자유주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자유주의 담론의 등장은 반갑기도 하다. "자유주의=부르주아 이념"을 고수하는 급진적 사상가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유럽에서는 1848년 혁명의 충격 이후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자유주의를 수용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점진적 확대도 이룩해갔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자유주의를 왜곡해왔다. 합리성, 개혁, 다원주의 등의 가치를 외면한 채 국가주의, 반공주의, 심지어 국가보안법의 근거로 자유주의를 선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국정치를 강타하고 있는 자유주의가 그나마 '진짜' 자유주의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자유주의인가? 그리고 필자는 무엇을 걱정하는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보자. 그는 오늘날 경제학이 과학으로 여기는 자유주의가 원래부터 절대 명제로 존재하던 것이 아니며 산업혁명 이후의 일련의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인클로저 운동과 대공장 확대가 맞물리면서 농촌과 도시를 부랑하는 수많은 빈민들이 발생했고, 그들로부터 농촌사회의 질서를 보호하고자 18세기 말 스핀햄랜드법이 도입됐다. 이 법은 농촌의 지주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생계가 보장되도록 추가임금을 무조건 지급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미 자본주의가 전면화된 마당에 이러한 시혜적, 가부장적 정책의 사회적 결과는 처참했다. 구호대상자가 한없이 늘어났고 노동규율도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일반인들의 세금부담 역시 한없이 높아졌다.


폴라니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이러한 국가의 어설픈 사회적 조율능력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잉여인간, 부랑자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자유는 온정주의, 가부장주의, 시혜의 간섭 없이 시장과 같은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고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사실 시장이란 인간의 피조물에 불과하며 자유 역시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만 온당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자유와 시장은 불변의 법칙으로 인간 밖에서 물신화(物神化; fetishism)되어갔다.

그저 기시감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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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저 기시감이길 바란다. 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 스핀햄랜드법, 물신화된 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영국에서의 궤적과 오늘날 한국에서의 자유주의의 역습의 배경 사이에는 큰 유사성이 존재해 보인다. 저성장, 청년실업, 재벌경제와 부의 집중, 비정규직 문제, 수많은 고공시위와 자살이 대변하는 프리카리아트 문제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2016년 촛불시위에 밑거름이 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반도체 기술독립, 부동산정책, 청년일자리정책 등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는 막연한 온정주의, 시대착오적 국가주도주의로 민중의 고통에 화답했다. 정책은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느끼는 당장의 고통은 '성장통'으로 치부됐다. 총론은 무성한데 세밀한 각론은 본 적이 없다. 재정 지원은 늘어났지만 제도개혁은 없었다.

정부는 온갖 자화자찬을 통해 권력의 진정성(sincerity)을 지지자들에게 각인했는지 몰라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따듯한 척하는 국가의 온정 따위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이제 잘 알고 있다. 사실 내용 없는 온정주의는 '민생 제일'이라는 구호를 쓰면서도 민생은 오히려 도외시하고 노동개혁 등을 추진한 박근혜 정부부터 이미 시작됐다.

이제 새로운 자유주의가 사람들의 텅 빈 가슴을 파고 들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자유주의도 물신화된 모습이다. 보수세력들은 재산권을 포함한 사적 자유, 권력의 제한, 시장의 자유 등 고전적 의미의 자유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유를 불변 또는 불가침의 법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유는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윤석열). 부모와 '빽'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실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이준석). 자유시장의 보편성이나 탈규제의 당위성은 "대학 첫 학기에 배우는 경제원론"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이며 "인류 역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다(윤희숙).

한국의 보수는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나 지역감정과 같은 퇴행적 언어를 더 이상 구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윤석열)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가치로 자유를 제시한다. 이 법칙에 대항하거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탈레반"(윤희숙)이며 "국민 약탈"(윤석열)이다. 자유는 사람과 자연, 시민과 공동체라는 관계 속에서 체험되고 쟁취되며 나아가 조정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획일적인 철의 법칙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결사권과 권력 분립을 저해하는 반자유주의적 입법활동을 무리하게 추진해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 목도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역습이 문재인 정부의 그러한 행보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폴라니의 통찰에서처럼 한국 역시 지난 20여 년의 역사의 궤적으로 인해 새로운 자유주의가 물신화되고 확고한 헤게모니적 지위를 확보하는 과정에 있다면 이것보다 무서운 일은 없다.

한국 역시 싱가포르처럼 "사형 제도를 갖춘 디즈니랜드"로 나아갈지 모를 일이다. 디즈니랜드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놀이기구에 오르는 소비자들은 있겠지만 현장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고단한 삶의 해법을 함께 모색해 나가는 집합적 의미의 생산자들은 없다. 자유주의가 철의 법칙이 돼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민이 아니다. 얄팍한 지식에 근거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어느 서생의 기우이길 바란다.
#자유주의 #폴라니 #물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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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비교정치, 정치경제, 동아시아 노동정치, 사회운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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