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70년대에 다니던 '중앙유치원' 원사 전경이다.
박진희
내 고소공포증의 단초는 1970년대에 다녔던 유치원의 '그네와 살구나무'일는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그네를 차지하기 위해 놀이터로 내달렸다. 그네 옆에는 담장 너머까지 가지를 뻗은 커다란 살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나뭇가지 꼭대기에 누가누가 높이 닿는지 앞다퉈 내기를 했다. 서열도 매겨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큰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선생님, ○○이가 그네에서 떨어졌어요."
이인자였는지 삼인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네를 꽤 잘 타던 남자아이가 살구나무 제일 높은 가지까지 그네를 구르다 공중제비를 돌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원사 안에 있던 아이들은 그네에서 떨어진 내막만 알면 그만이었던 데 비해, 직접 낙하 장면을 본 아이들은 피 흘리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목격하고는 울고불고 난리를 쳐댔다.
수십 년 전 찍은 졸업앨범과 사진 몇 장이 남아 있어 특별했던 원사 전경이며, 생일을 맞아 축하 파티를 벌인 일, 대학교 강당에서 무용 발표회에 나간 일 등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갖고 있는 사진으로 추억하는 것을 제외하면 유치원과 관련된 추억이라곤 '그네 사건'이 유일하다.
소설을 쓰게 생겼다
7월이 시작되고,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공주고마센터에 간다. 문화체육관광부, 충청남도, 충남문화재단이 주최· 주관하고 공주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2021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15회의 교육이 끝나는 10월 말쯤 문학 수업을 듣는 나는 한 편의 소설을 써내야 한다.
두 차례의 강의가 진행됐는데, 매주 작문 숙제가 주어지니 첫 강의를 듣고는 때려치울까도 생각했다. 매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고, 그러다 진짜 그만둘지도 몰라 고명하신 강사진 소개는 미뤄둔다.
7월 6일에 있었던 첫 강의에서 한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은 금기시된 인간의 욕망을 글로 표현하는 거예요."
두 번째 시간에는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 자세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로도스 섬,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지 예시로 들어졌다. "관찰하라 그리고 생각(발상)하여 표현하면 글이 된다"라는 게 강의 요지다.
이번 주 제출할 과제 제목은 '나무'다. 나는 제일 먼저 떠오른 '내가 다닌 유치원의 살구나무'에 대해 쓸 것이다. 앞으로 나의 고소공포증과 살구나무 사건을 어떻게 엮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그보다 먼저 과제에 항복해서 중도 하차하지 않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첫 강의에서 강사님은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말투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말투의 특징은 잦아들고, 강의 포인트마다 가수 나훈아가 비쳤다. 특유의 입술을 '앙' 다문 표정이 똑 닮았다. 세 번째 강의에서 무엇을 듣고 얻게 될지 모르지만, 강사님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수업은 지루할 틈이 없을 거다.
눈 가리고 아웅 하게 생겼지만, 이 나이에 혼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니 서둘러 이번 주 숙제를 끝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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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 속, 그네에서 떨어진 아이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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