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뚜껑을 열어보니 기말고사의 결과도 중간고사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성적의 극단적인 양극화. 정규 분포 곡선으로 나타낸다면, 점수를 나타내는 가로축과 평행선을 그리게 될 듯하다. 일반적인 정규 분포라면 평균 점수 주변이 볼록한 게 정상이다.
이번 기말고사는 출제 과정에서부터 신경이 곤두섰다. 성취 기준에 충실하되 최대한 쉬우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문항을 개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사실 이 둘은 '동그란 네모'처럼 모순된 조건이다. 문항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주는 게 필요하다. 더러 반마다 '답안지만 필요한'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답안지만 필요한' 아이란, 시험지가 배부되기도 전에 이미 찍고 엎드려 자는 경우를 말한다.
특별하달 게 없는 방법이지만, 일단 문항 수를 늘리고 배점을 낮췄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쉬운 내용을 위주로 출제하되, 상위권의 변별을 위해 이른바 '킬러 문항'을 중간에 몇 개 꽂아놓았다. 수능 시험의 국어 영역이나 수학 영역과 유사한 출제 방식이다.
상대평가 방식이 지닌 근본적 한계
문제의 '질'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취 기준에 맞춘다고는 해도 시험을 통해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적잖이 민망하다. 솔직히 동점자를 최소화하며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 세우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담이지만, 이는 상대평가 방식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다. 겹치지 않도록 한 줄로 세우려면 누군가는 틀려야 하고, 그러자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묻거나 곳곳에 함정을 파두어야 한다. 수능 한국사는 매번 1등급인데, 내신성적은 채 3등급도 안 되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더욱이 기말고사는 100% OMR 카드를 사용하는 선다형 방식이다. 다른 교과는 몰라도, 역사 시험만큼은 교육 목표를 고려할 때 서술형이 제격이지만, 자칫 공정성 논란이 빚어질 수 있어 피하게 된다. 부분 점수에 대한 채점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OMR 카드 리더가 채점하는 선다형 방식은 신뢰해도, 교사가 점수를 매기는 서술형 시험엔 심심찮게 문제를 제기한다. 채점 과정에서 교사의 주관이 개입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수능을 더 신뢰하는 심리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대신 중간고사를 100% 서술형으로 출제한다. 드문드문 단답형 문항도 끼워 넣곤 하는데, 이는 백지 답안지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이들이 체감하는 단답형과 서술형 문항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서다. 하긴 어떻게 해도 한 반에 10% 남짓은 백지 답안지다.
100% 선다형 시험에서 0점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한 번호로 긋든, 지그재그로 찍든 몇 문제는 걸리게 돼 있다.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니, 정답을 맞힐 확률은 20%인 셈이다. 아이들은 누군가 20점 미만이라면 0점과 마찬가지라면서 차라리 찍으라고 비웃는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낳다
심사숙고해 시험 출제를 했건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커녕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0점과 다를 바 없다는 20점 미만 학생이 네 명 중 한 명꼴이나 됐다. 반대로 90점 이상의 고득점자도 스물네 명 한 반에 대여섯은 되니, 그다지 어려웠다고 할 순 없다.
더욱 놀라운 건, 점수 분포상 가운데인 50~60점대가 반마다 고작 서너 명뿐이라는 점이다. 양극단인 20~30점대와 80~90점대가 많고 중간이 텅 비어있는 기형적인 형태다. 비율로 치면, 백지 답안지가 많았던 중간고사 때보다 되레 양극화가 더 심해진 양상이다.
반성하건대, 100% 서술형과 선다형 방식의 차이로 본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선다형에 익숙한 데다 글쓰기에 서툴러 서술형 시험을 지레 포기한 것일 뿐이라는 판단은 틀렸다. 그게 아니라, 아이들도 선선히 인정하듯, 그냥 공부를 손에서 놔버린 것이다.
중위권의 붕괴가 뼈아프다. 중간고사 때 평균 언저리에 있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위권으로 주저앉은 모양새다. 상위권이던 아이가 중위권으로 내려앉은 경우는 드물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져, 교실에선 그들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처지가 됐다.
교실에서 중위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수업의 붕괴로 귀결된다. 교사가 수업을 준비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이들이 중위권이다. 그들의 학업 수준에 맞춰 내용을 편집하고 적절한 단어를 고른다. 그들은 수업 중 모둠활동을 할 때도 상위권과 하위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들이 사라진다는 건 교사가 수업 중 방향타를 잃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수준을 상위권에 맞추면 하위권이 쓰러지고, 하위권에 맞추자니 상위권의 쏟아지는 하품을 막을 길이 없다. 모든 교사가 공감할 테지만,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야말로 교실에서 수업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23년 교직 생활 중 처음 겪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