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베 겐타로조선 근대사 연구의 개척자로 알려진 야마베 겐타로는 기인이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청소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택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야마베의 기인 같은 풍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서해문집 <역사가에게 묻다>
그가 후배들에게 '공짜'로 자료 수집 노하우를 전한 건 아니다. 야마베에게 푼돈을 '뜯긴' 후배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도서관에 관련 문헌을 조사하러 나온 젊은 연구자들은 그에게 수시로 잔돈을 뜯겼다.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의 회고에 따르면, 야마베는 귀가하려고 도서관을 나서기 전에 차비가 없다며 10엔을 요구하곤 했다. 사는 데까지 가려면 20엔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얻어 쓰는 주제에 어떻게 다 타고 가느냐, 중간쯤에 내려서 걸어간다"라고 답했다. 그러다 <일한병합소사>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 의외의 사실이 공개됐다. 야마베가 자신은 옷 안주머니에 항상 1만 엔을 갖고 다닌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평소에는 수중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자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료를 마주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금으로 갖고 다닌다는 것이다. 1만 엔은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수시로 대선배에게 푼돈을 뜯겼던 후학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자료 수집의 대가인 야마베는, 특히 1차 사료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1차 사료를 찾아라. 살아 있는 사료, 손대지 않은 사료를 찾아 공부하라!"
'논문은 사료로 말해야 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야마베는, 자신의 지론처럼 엄격한 연구자였다. 그는 이런 엄격함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던 모양이다. 자신이 애써 모은 사료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서관의 기인'답다.
앞서 감옥에 있을 때 야마베가 청소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출소 후에도 야마베는 자신의 집을 전혀 치우지 않았다. 도쿄 요요기(代々木)와 쵸후(調布)에 살았던 그는, 온갖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고양이 30마리와 함께 살았다. 손님이 오면 방 한구석을 치우고 DDT를 뿌리고 앉으라고 했다. 머리와 수염을 다듬지 않았고, 옷차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미스즈서방(みすず書房) 편집자 오비 도시토(小尾俊人)는, 이 시절 야마베 겐타로를 회고하는 글을 남겼다.
"수염은 깎지 않고, 손에는 보자기, 늘 게다(나막신)를 신은 차림으로 나타나 자료조사에 몰두하는 야마베 씨, 처음으로 아사가야(阿佐ケ谷)의 댁을 방문했을 때 인상이 선명하다. 책은 선반이 아닌 거실 바닥에 잔뜩 깔아놓고, 그 위에 침구와 식기도 놓여 있었다. 고양이가 십여 마리 그곳에 동거하고, 야릇한 냄새도 풍겼다. 그런 생활의 연상과는 전혀 대조적으로 원고의 글자는 한 칸 한 칸 단정하게 아름답고 멋있었다. 사실(事實) 앞에서의 겸허함, 명쾌한 판단, 산뜻한 문장, 순간의 유머, 그런 야마베 씨였다."
혹자는 야마베가 쓰레기 집에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누가 '역사의 쓰레기'였는지 끝내 증명했다.
고양이와 어린이를 사랑한 미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