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에서 본 정원 풍경분재작품들이 돌과 정원수 등과 조화를 이루며 관람로를 따라 배치돼 있다.
황의봉
오늘은 '생각하는 정원'에서 우아한 하루를 보냈다. 어제 성범영 원장으로부터 오랜만에 차 마시러 한번 놀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뜸했던 것 같다. 성 원장의 생각하는 정원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자주 오가던 터였다.
1995년 10월의 일이니까 벌써 24년 전의 일이다. 당시 몸담았던 신문사 초청으로 중국 인민일보의 판징이(范敬宜) 총편집이 서울에 왔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최고의 권위지이고, 신문 제작의 총책임자인 총편집은 경영을 맡은 사장과 동격으로 장관급이다. 판징이 총편집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그를 안내하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다.
심포지엄 등 서울 일정이 끝난 후 판 총편집은 제주도에 가보기를 원했다. 오래전 일이어서 세세한 일정은 대부분 잊었지만, 분재예술원을 안내한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전시된 분재작품들을 감상하고, 원장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붓글씨로 방문 기념 휘호를 남겼다. 판 총편집은 글뿐 아니라 붓글씨로 유명한 서예가이기도 했다. 분재예술원을 방문한 그날 밤 숙소에서 나에게도 붓글씨 작품을 2점 써주었다.
'생각하는 정원'이 된 분재예술원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나는 분재예술원을 잊고 있었다. 성범영이라는 이름도 기억에 없었다. 더욱이 분재예술원은 2007년 생각하는 정원으로 바뀌었으니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5년 9월 신문에 난 성 원장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그곳이 바로 옛날 판징이 총편집과 함께 방문했던 분재예술원임을 알게 됐다.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성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20년 전 인민일보 총편집을 안내해서 함께 갔던 사람이라고 하니 반갑다며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정원과의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마침 생각하는 정원이 있는 한경면 저지리는 애월 집에서도 가까웠다. 그때부터 자주 놀러 가서 정원을 감상하고, 정원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과거 분재예술원이 분재작품 위주로 진열한 평면적인 정원이었다면 요즘의 생각하는 정원은 입체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높고 낮은 돌담과 돌탑, 제주 특유의 오름 이미지를 구현한 작은 언덕들, 인공폭포와 연못,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관람로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정문에 들어서면 관람로를 따라 환영의 정원, 영혼의 정원, 영감의 정원, 철학의 정원, 감귤의 정원, 비밀의 정원, 평화의 정원으로 이어진다. 이들 작은 정원마다 기묘한 형상의 분재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살아있는 줄기와 죽은 줄기가 함께 어울려 서로를 감고 있는 기묘한 형태의 주목, 돌과 한 몸이 돼 돌을 껴안은 모습으로 자란 느릅나무, 뿌리 부분을 잘라 거꾸로 심고 접을 붙여 기른 모과나무 등 작품 하나하나마다 절묘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 분재작품들은 모두가 수십 년 동안 성 원장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된 보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