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를 부른 김경아 명창.
인천시
- 7월 1일 '인천 독립 40주년 기념식' 때 세계 속의 인천이란 의미에서 '배 띄워라'를 독창했고, 이연성 성악가와 콜라보로 '아름다운 나라'를 불렀는데. 직접 노래를 골랐나.
"제가 노래를 골랐다. 인천 앞바다 서해는 북한과 바다로 맞닿아 있다. 가사를 보면,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강 건너에 있는 벗님도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같이 가자는 내용이다. '띄운다'는 건, 또 다른 출발을 뜻하기도 하고."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동서남북 바람 불제 / 언제나 기다리나 / 술 익고 달이 뜨니 / 이때가 아니 드냐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바람이 안 불면 노를 젓고 / 바람이 불면 돛을 올려라 / 강 건너 벗님네들 / 앉아서 기다리랴 / 그립고 / 서럽다고 울지를 마랴 / 얼씨구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배 띄워라 / 배 띄워라|<배 띄워라> 가사
"판소리는 전승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혹은 소리꾼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섬진강 줄기를 기준으로 동쪽 지방에서 불린 동편제(東便制)와 서쪽 지방에서 불린 서편제(西便制)로 대별된다. 동편제가 대마디 대장단의 선이 굵은 소리라면, 서편제는 섬세함과 기교를 갖춘 소리로 특징을 짓기도 한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크게 보아 동편제에 속하는 소리로 볼 수 있는데, 조선 후기 8대 명창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김세종에 의해 전승돼 온 소리다.
김세종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가 고창에서 소리꾼들을 모아 교육할 때 소리 선생으로 판소리를 지도한 소리꾼이자 이론가였으며,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을 경회루 낙성연에서 출연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김세종의 춘향가는 흥선대원군이 특별히 총애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전에서 펼쳐지는 춘향가는 정제된 선율과 표현, 문학적 우수성으로 인하여 양반들조차 애호하고 향유할 정도의 예술적 깊이를 갖는 판소리로 꼽힌다. 이러한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찬업, 정응민을 거쳐 나의 스승 성우향으로 이어져 왔다."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서문)
- 2년 전인 2019년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를 범우사에서 펴냈는데.
"김세종제 판소리는 정통 동편제다. 이에 반해 동초제(東超制)는 동초 김연수 명창(1907∼1974)께서 만든 건데, 관객들이 좀더 쉽게 이해하고 들을 수 있도록 풀어서 썼다. 그러다보니 판소리 시간은 더 길어졌다."
김 명창은 예전 언론 인터뷰에서 "소리꾼으로 살아오면서도 제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른 적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판소리 사설이라는 게 본시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훗날 누군가 받아 써 창본(唱本·노래 책)으로 엮어진 것들이라, 오·탈자는 차치하고 역사적 사실관계가 아예 틀린 것도 부지기수거든요. 그것이 오랜 세월 굳어지고 정형화되어 스승의 입을 통해 축자적(逐字的)으로 대물림되어 왔던 거죠.
대개의 구전이 문자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사본들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판소리도 그 대표적 특성 중 하나인 '더늠'(制, 판소리 명창들에 의해 노랫말과 소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다듬어져 이뤄진 판소리 대목)으로 인해 지역적 특성과 정서가 새로이 가미되고, 그것을 전수받은 소리꾼의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사설과 장단이 부분부분 윤색되고 변형되면서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판본'들이 파생되곤 했지요." (<유사랑의 인천인 列傳> 중에서, 2000년 12월 6일)
- 판소리 사설(辭說)의 오류를 찾아서 바로 잡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저는 숟가락만 얹었다. 제가 (판소리 사설을) 처음부터 쓴 게 아니지 않나. 확인해보니 잘못 쓰여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강산제 심청가> 뒷부분에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를 썼다. 유관순의 오빠 이름도 틀리고, 역사적인 날짜 기록도 틀리고, 앞뒤가 뒤죽박죽인 경우도 있었다. 창피한 일이다. 그걸 그대로 부르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책 작업을 하게 됐다.)
물론 제가 정리한 내용 가운데서도 또 틀린 게 나올 거다.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문학적인 가치도 뛰어나다. 그래서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하다보니 의미가 다르게 부르게 된다. 뜻을 알게 되면 내용 전달을 훨씬 잘할 수 있다.
어려운 한자라고 해도 내가 뜻을 정확히 알면 공연할 때 몸짓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 저도 틀리게 배운 대목을 지금까지 수만 번 불러왔는데, 이걸 고치려면 또 그만큼 불러서 입에 자연스럽게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 책을 출판한 뒤 완창을 해야 하는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아 미치는 줄 알았다. 몰입해야 하는데 몰입이 잘 안 되는. 그래서 제가 고쳐놓고도 가끔씩은 옛날 걸로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