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저학년까지만 시골 학교 보내보라는데... 괜찮을까?

[로또교실49] 도심의 큰 학교와 시골의 작은 학교의 장단점

등록 2021.08.05 08:55수정 2021.08.05 08:55
1
원고료로 응원

강원도에는 폐교를 앞둔 소규모 학교가 많다. ⓒ 이준수

 
나는 십 년을 작은 학교에서만 보내다가 작년부터 큰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작음의 기준은 한 학년에 학급이 두 개 이하인 학교다. 강원도에서는 춘천, 원주, 강릉을 제외하면 소규모 학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대 도시라 해도 인구 20~30만의 소도시지만, 여기에서는 꽤 큰 동네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 지난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전교생 스무 명 규모의 학교에 몸담고 있었다. 내가 근황을 전하자 "큰 학교 가니까 어때? 좀 달라?"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는 학교가 다 비슷하죠, 하고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라 다르긴 다르더라구요, 하고 말았다. 

작년 우리 반 A는 교우관계로 속앓이를 했다. 함께 어울려 다니는 그룹 내의 우정 문제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심하지 않았으나, 미묘한 의견 불일치와 오해로 A는 자주 힘겨워했다. 사춘기 여학생 간의 갈등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누가 보면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다고 평가할 만큼.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작은 학교에서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시골에서는 여학생 관계가 삐그덕 거리면 학부모들도 덩달아 삐그덕거린다. 워낙 좁은 마을이다 보니 어른들은 친인척, 직장 동료 관계 등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수가 적어 유치원부터 초, 중, 고에 이르기까지 같은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 학교뿐 아니라 학급까지 똑같이. 

이런 형편이니 구성원 간 인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서로 얼굴 붉히는 사안을 덜 만들고, 설령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미덕이다. 그래서 나는 A도 적당히 싸우다가 화해하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지금껏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왔으니까. 하지만 A는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일부러 맞추고 싶지 않아요. 어색해도 그냥 있을래요. 올해만 지나면 되잖아요."

농사 망쳐도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 뭐, 하는 농부의 말투다. 나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과연 시내의 큰 학교라고 생각했다. 한 학년에 다섯 반이 되고, 각 반에는 스무 명이 넘는 친구가 있다. 기질이나 성격 차이로 인해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은 학교였다면 시도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큰 학교라면 가능하다. 실제로 A는 새 학년에 올라가면서 새 단짝을 만나 잘 지내고 있다.


작은 학교의 어마어마한 이점
 

최근까지 분교로 운영되다 학생수 감소로 인해 폐교한 근덕초등학교 동막 분교 ⓒ 이준수

 
여기까지만 읽으면 작은 학교가 별로 일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마어마한 이점도 있다. 우선 코로나 시즌에 전면 등교가 가능하다. 강원도에는 길어지는 등교 공백을 피해 수도권에서 전학 온 학생이 꽤 있다. 전교생이 서로의 안부를 물을 만큼 친밀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챙기며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보통 형제자매가 함께 학교에 다니므로 선후배 사이에 거리감이 적다. 졸업할 때까지 동학년 학생 안면도 다 트지 못하고 진학해버리는 큰 학교와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작은 학교는 농산어촌에 많이 분포해 있다. 농산어촌 학교는 특별 예산이나 지원금이 넉넉해서 방과후 교실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 활동을 무료로 진행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모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이 해외로 문화탐방을 떠났다. 당시 학생 개개인이 지불한 금액은 극히 적었다. 대규모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다. 

최근에는 학구 제한이 풀려있는 농어촌 학교가 있어 도심에서 일부러 통학하기도 한다. 특히 골프 교육 등 학부모의 관심도가 높은 주제를 채택한 학교는 해당 학구가 아닌 학생이 전체 인원의 80%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스쿨버스를 오래 타야 하므로 아침에 일찍 서둘러야 하지만, 그것을 상회하는 매력이 있다는 소리다. 더구나 입시 부담이 덜한 초등학교 단계에서 시골 경험은 개인에게 소중한 문화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집 큰아이도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집 앞의 큰 학교를 보낼 것인가, 버스로 10분 거리의 시골 학교에 갈 것인가. 각각의 장단이 뚜렷해서 쉽사리 마음을 정하기 어렵다. 내부 사정을 세세히 잘 알기에 오히려 더 복잡하다. 아이에게 물어봐도 7세가 감당하기 힘든 물음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녀를 전교생 서른 명 규모의 농촌학교에서 키운 선배는 "정 고민되면 저학년까지만 우선 다녀 봐"라고도 한다. 말이야 쉽지만, 한 번 맺은 우정과 관계망을 중간에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런 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되고. 강원도 지방 소도시에 살면 이런 걱정도 하고 산다. 시골 학교가 자꾸 줄어드는 추세라 언제까지 이 걱정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골학교 #초등학교 #진학 #시골 #지방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